[편집자시선]사회안전망 구멍...말 뿐인 ‘약자 복지’

[편집자시선]사회안전망 구멍...말 뿐인 ‘약자 복지’

전주 위기가구 여성 사망, 한 발씩 늦는 복지 행정
윤정부 내년 약자지원 예산 삭감, 적극 행정 아쉬워

기사승인 2023-09-18 10:08:51

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라북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전북 전주에서 최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서신동에 5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40대 여성이 숨져 있고 곁의 어린 아동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복지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밝힌 직접적인 사인은 '동맥경화', 생전에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생활고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후 20개월 전후의 아동은 수일간 음식물을 먹지 못해 쇠약한 상태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숨진 여성이 이미 정부의 위기가구 대상에 포함돼 있어 지자체가 적극 행정을 했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수도·전기·가스요금·건겅보험료 등을 두 달 이상 내지 못하면 위기가구로 지정하고 정도가 심한 고위험군은 조사대상자로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했다.

숨진 여성은 집세는 물론이고 가스비 3개월치, 건강보험료는 56개월 치를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 6350원에 달했고, 매달 5만원씩인 관리비도 반년간 밀려 있었다. 장기간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었던것이다. 전주시는 통보를 받고 3차례 접촉을 시도했다고 하나 만남은 물론 연락도 닿지 않았다고 한다. 
 
또 곁에 있던 아이는 출생신고도 안 돼있고 숨진 여성의 가족관계증명서에도 등록돼 있지 않아 지난 정부의 ‘그림자 아동’ 전수조사 때도 빠져 있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안전망과 복지 대책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모녀’, 지난해 8월 희소병을 앓다 숨진 ‘수원 세모녀’, 11월 서울 신촌 생활고 모녀의 사망 등 비극적 사고가 잇따르면서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이번 전주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 현장의 복지 전달체계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위기가구를 돕는 복지 행정은 늘 한 발짝씩 늦는다. 정부나 지자체들은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나서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직도 생활고로 시달리는 위기가구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 위기가구들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모르거나, 알아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시민단체 분석을 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위기가구로 발굴된 이들 가운데 공적 서비스로 연계된 이들은 12%에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철저한 대책을 지시했다지만 비극적인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약자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복지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고, 복지 전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전주 서신동 주민센터의 경우도 위기가구 대상자는 550명인데 담당 공무원은 단 1명 뿐이었다. 공무원에게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 국고보조사업에서 ‘약자 지원’ 예산을 대거 삭감됐다.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를 보면 노인·아동·청소년·장애인 예산이 삭감되면서 278개 사업 중 176개(63.3%)가 폐지·통폐합되거나 감축 판정을 받았다.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자복지’는 결국 말잔치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지, 취약층을 지원하는 복지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주민센터와 경찰, 소방, 사회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우유 배달종사자와 각종 봉사단체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 활용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사회복지직 공무원 증원과 한발 앞선 적극 행정 ‘찾아가는 복지’만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경기침체의 고통은 취약계층에 더 무겁고 그 후유증도 깊다. 빠듯한 예산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김영재 기자
jump0220@kukinews.com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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