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연애해도 ‘집’ 없으면 결혼 안 해요 [요즘 신혼부부①]

10년 연애해도 ‘집’ 없으면 결혼 안 해요 [요즘 신혼부부①]

기사승인 2023-10-04 06:05:02
쿠키뉴스 자료사진.

“1억원이면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내년 초 결혼을 준비 중인 김미경(30‧가명)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7년 전 처음 만난 김씨 커플은 4년 전 결혼을 약속하며 1억원을 모으기로 했다. 2019년 당시 1억원이면 작은 아파트 전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세금 대출 70~80%를 받으면 남는 현금으로 결혼식과 각종 결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년 만에 두 사람은 1억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파트엔 들어갈 수 없었다. 5년 만에 1억원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 됐다.

“차라리 그때 결혼했더라면…” 김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최근 5년간 폭등한 집값에 차라리 일찍 결혼했으면 나았을까 생각한다. 과거엔 청약이 안 돼도 오래된 아파트를 사서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래된 아파트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김씨는 “전세 사기도 무섭고 매매는 비싸고. 결혼하면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하나요”라고 한탄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오르는 집값, 내려가는 혼인율

결혼 계획이 있는 요즘 청년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집’이다. 결혼 후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집은 꼭 필요하다. 문제는 최근 5년간 집값이 폭등했다는 사실이다. 쿠키뉴스가 KB부동산의 아파트 매매 평균 가격을 분석한 결과,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2017년 8월 3억2838만원에서 지난달 4억9644원으로 51.17% 올랐다. 서울은 더 심하다.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평균 가격은 2017년 8월 6억3628만원에서 11억8519만원으로 86.26%나 올랐다.

집값이 50% 이상 폭등할 동안 임금은 5.8% 오르는 데 그쳤다. 통계청 가계조사동향에 따르면 2018년 2분기 가구당 평균 소득은 4530만원에서 올해 2분기 4793만원으로 5.8% 상승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결혼을 안 하는 데는 집값 상승 영향이 있다”라며 “집값이 58% 오를 동안 임금이 5.8% 오른 건 생색내기용”이라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청년들이 참 불행한 시대”라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고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약자인 청년들의 지원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결혼 후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전세, 매매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30년 전 결혼한 A(50대)씨는 “부모님 반대에 집을 나와 보증금 없이 월세 5만원 단칸방에서 수저만 들고 신혼살림을 차렸다”라고 했다. 그가 단칸방에서 다세대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월세 단칸방에서 빠르게 돈을 모아 1년도 안 돼서 서울 강서구 다세대주택 전세로 이사 갔다. 이후 대출을 받아 신축 빌라를 매매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A씨는 “당시 신축 빌라를 1억5000만원에 샀으나, 5000만원에 매매할 수 있는 집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2023년엔 불가능한 얘기다. 특히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더 힘들다. 쿠키뉴스가 통계청 가계조사동향과 KB주택가격동향조사를 통해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수(PIR)’을 분석한 결과,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숨만 쉬어도 서울에 내 집 마련까지 24.7년이 걸린다. 2018년 당시 16.5년이 걸렸던 것에서 8년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내 집 마련 소요 시간은 7.8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고급 아파트만 원하는 건 아니다. 결혼을 계획 중인 변모(27)씨는 오피스텔 풀옵션 전세도 긍정적으로 본다. 변씨는 “신혼집의 경우 전세도 괜찮지만,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부담된다”고 말했다. 내년 초 결혼을 앞둔 권모(30대)씨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원하지만, 나날이 치솟는 집값과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라고 토로했다.

경기 고양시 지축역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민간 청약은 ‘로또’, 신혼희망타운은 ‘좁아’

“우리 청약된 다음에 결혼하자” 청년들 사이에선 ‘선 청약 당첨, 후 결혼 준비’는 문화처럼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주은서(24)씨도 지난해 3년 만난 남자친구와 아파트 청약이 되면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신혼부부 청약을 먼저 넣은 뒤 당첨이 되면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주거 부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뜻 결혼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흔히 민간 청약은 ‘로또’라 불린다. 당첨도 어렵지만, 분양가도 비싸 쉽게 엄두를 못 낸다. 김미경씨는 “본가 근처인 서울 강서구에 청약을 넣고 싶었지만, 분양가가 7억원대라 못 넣었다”라며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낮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도 두 번 지원했지만 광탈(광속 탈락)했다”라고 말했다. 인천 신도시도 분양가는 5억원대에 이른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전국 아파트 청약 결과를 보면, 입주자 모집 공고일 기준 지난 8월 전국 경쟁률은 20.3대 1, 서울 평균 경쟁률은 53.9대 1로 조사됐다. 분양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3.3㎡당 1625만원으로 전년 동월(1453만원) 대비 약 11.88% 상승했고, 서울은 같은 기간 2821만원에서 3192만원으로 분양가가 약 13.16% 급등했다. 예를 들어 59㎡(25평)아파트는 전국 평균 4억625만원, 서울 평균 7억9800만원인 셈이다.

신혼부부들의 남은 희망은 공공분양주택인 ‘신혼희망타운’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신혼희망타운은 무주택자이면서 혼인 기간이 7년 이내거나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부부, 혼인신고 예정인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공급된다.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하다. 그러나 전용면적 60㎡ 이하로 제한된 좁은 평형과 비선호 입주지역으로 민간 청약 대비 경쟁률이 낮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4차 공공 사전청약 접수 결과, 신혼희망타운은 7152가구 모집에 총 2만5200명이 신청해 3.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부 미달이 난 지역도 있다.

좁아도 신혼희망타운을 선택한 신혼부부들도 있다. 주은서씨는 경기 파주시와 경기 고양시 신혼희망타운 2곳에 모두 당첨됐다. 주씨는 “당장 자녀 계획이 없기도 하고 공공임대로 인근 아파트 대비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며 “결혼을 마음먹고 집을 알아봤지만 기존 아파트는 비싸서 부담이 커 신혼희망타운으로 눈을 돌렸다. 확실히 다른 아파트와 청약 대비 저렴해 비용적으로 부담이 적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뉴홈과 청년 원가주택 정책을 추진하며 신혼희망타운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분양형 신혼희망타운 신규 사업 승인 건수는 ‘0건’으로 알려졌다.

“집은 과거에도 지금도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존재인데 너무 갖기 힘들어서 집은 꿈 같아요. 현실을 보면 내 집 마련은 점점 포기하게 되고 꼭 집이 필요한가 싶기도 해요. 단칸방에서 살던 과거가 오히려 더 낭만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년 결혼을 앞둔 김미경씨)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하고 애를 낳았다지만, 현대사회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은 더욱 중요해진 것 같아요. 집은 결혼의 완성은 시작이자 마침표입니다. 분명히 과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과 물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젊은 청년에게 현대사회는 포기를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 결혼을 앞둔 권모씨)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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