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의약품이 마약으로”…막을 방도 없나

“일상 의약품이 마약으로”…막을 방도 없나

5년간 식욕억제제 처방 건수 3천만건
“약 처방 때까지 버티는 환자도 생겨”
식약처, 마약류 관리 시스템 고도화

기사승인 2023-10-17 06:00:22
게티이미지뱅크


식욕억제제 등이 무분별하게 처방되며 마약류 의약품으로 활용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마약류 의약품 처방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손쉽게 구입하는 의약품이 마약화하는 게 문제다”라며 “식욕억제제 등이 마약으로 둔갑해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도 “마약류 식욕억제제 온라인 판매 적발 건이 2021년 181건에서 2022년 810건으로 폭증했다”라며 “90% 이상이 젊은층의 접근이 용이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통량이 증가하고 마약 범죄가 늘어난 데 비해 정책적인 뒷받침이 없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의원들의 질타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의료용 마약류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범정부적으로 마약류대책협의회에서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종합대책을 만들고 있다”며 “앞으로 마약류 관리에 대해 디지털 기법 등을 접목해서 시스템을 고도화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마약류 의약품 처방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오남용 위험이 크고 의존성과 중독성 등 각종 부작용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식욕억제제는 펜터민(phentermine), 펜디메트라진(phendimetrazine), 디에틸프로피온(diethylpropion), 마진돌(mazindol) 등으로 오남용 위험이 있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부작용으로 약물이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불면증, 어지러움, 두통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평소 불안이나 우울증이 있는 경우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식욕억제제는 의존성이나 내성을 유발할 수 있어 단기간 사용해야 하지만 실제론 장기간 과다 처방되는 사례가 많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식약처에서 받은 마약류 식욕억제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년 5월부터 2023년 6월까지 5년간 식욕억제제 처방 건수는 3032만건, 처방량은 12억5697만개로 집계됐다. 부작용 발생은 1282건에 달했다. 2022년 기준 식욕억제제 처방량 상위 환자 중에는 14개 의료기관에서 총 106번 처방받아 처방량이 6678개에 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선 현장에선 마약류 의약품의 무분별한 처방을 막기 위한 제제가 필요하지만, 명확한 규제와 시스템이 확립돼 있지 않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이창현 대한내과의사회 의무이사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펜터민 같은 식욕억제제는 3개월만 쓸 수 있는데, 이 기간이 끝나면 다시 쓸 수 있는 기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의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며 “펜터민이 식욕 억제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약값도 한알에 500~600원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약을 복용했던 사람은 중독돼서 다른 약을 안 쓰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의무이사는 특정 환자에게 마약류 의약품이 처방됐을 때만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비만 환자한테만 식욕억제제가 처방되도록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하는 게 오남용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며 “이를 통해 90일 처방 이후에도 환자의 요구에 못 이겨 처방하던 의사들도 급여 환수가 두려워 약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마약류 의약품의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교육과 홍보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내과 A전문의는 “단속이 강화되며 약을 못 주게 되니까 환자들의 불만사항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어 “약을 처방해 줄 때까지 진료실에서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환자도 생겼다”면서 “정해진 처방기간을 넘지 않도록, 또 약을 장기간 복용했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짧은 진료 시간 동안 많은 환자를 보느라 의약품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의료 환경이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는 “의사와 환자 간 의사소통을 통해 약의 사용을 줄일 수 있는데,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 약 처방 쪽으로 기울게 된 것 같다”며 “의사들은 약 처방을 할 때 환자에게 남용 위험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교감하며 치료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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