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 어르신들 가족에게 보내는 감동 편지 '눈길'

접경지역 어르신들 가족에게 보내는 감동 편지 '눈길'

기사승인 2023-10-25 11:16:46
25일 화천군청 1층에서 성인문해교육 수강생들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화천군 제공)
강원 접경지 화천의 어르신들이 뒤늦게 깨우친 한글 덕분에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23일 화천군청에서 2023 성인문해교육의 일환으로 '재미있는 한글' 전시회가 조촐하게 마련됐다.

1층 입구를 가득 메운 전시대 위에는 지난 1년 간 성인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직접 쓴 시와 편지, 그림 작품들이 놓였다.

아직 맞춤법 일부가 부정확하기는 했지만, 정성껏 써내려간 글 속에는 하나같이 배움에 대한 기쁨, 그동안 글을 몰라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하지 못했던 애틋함이 넘쳐 흘렀다.

수강생 A씨는 '인생 살맛 나'라는 시화작품에서 직접 그린 푸른 하늘과 태양, 구름 그림 배경 위에 '어딜 가면 글을 몰라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모르는 겹받침 알고 보니 너무 신기하다. 이젠 어딜 가도 당당하고, 용기가 생겨 신나고 살맛난다'는 글자를 적었다.

수강생 B씨는 '한글은 신기해'라는 작품을 통해 '내 이름 석자 쓸 줄 몰라 사는게 답답하고 자신 없었다. 이제 글 배우니 신이 나고, 학교 갈 시간만 기다려진다. 텔레비전 글자도 잘 읽는 내가 신기하다'고 기뻐했다.

또 수강생 C씨 역시 '6.25때 공부도 못하고, 힘들게 살았는데 글자를 좀 아니까 마음이 좋다. 그동안 고생한 나! 너무 수고 많았어'라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C씨가 그린 시화작품 배경에는 무지개와 코스모스, 봄의 새싹과 나비가 살아있는 듯 너울거리고 있었다.

가족에게 전하는 편지들도 군청을 오가는 주민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던졌다.

수강생 D씨는 시화 작품에 '엄마가 글자를 몰라 얼마나 놀림 받았나 몰라. 6.25때 아버지 돌아 가시고, 먹고 살기 바빠 공부 못했는데, 이제라도 글을 배워 얼마나 다행인지. 한글 공부해서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엽서 쓰는 날도 오는구나'라고 적었다.

화천군은 2010년 간동노인대학 운영을 시작으로 한글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교육부 공모사업 선정으로 5개 읍면에서 성인문해교육 ‘찾아가는 한글교실’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어르신 한글교육 뿐 아니라 디지털 문해교육, 기초수학, 공예, 원예, 내고장 바로알기 문화체험 등 다채롭고 알찬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말 못할 사정으로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강원 화천지역 어르신들이 검정고시 없이 초등학력 인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화천군이 올해 도교육청으로부터 초등학력 인정기관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더 많은 어르신들이 한글교육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보다 즐겁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31일까지 군청에서 시화전 전시회를 진행하고, 내달 2일부터 7일까지, 화천국민문화체육센터 화천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화천=한윤식 기자 nssysh@kukinews.com
한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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