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위험 노출’ 가정방문 돌봄…“닫힌 공간서 피해 반복”

‘성희롱 위험 노출’ 가정방문 돌봄…“닫힌 공간서 피해 반복”

6일 ‘가구방문 돌봄노동자 성희롱 피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음담패설부터 신체접촉까지…노동자 60%, 소극적 대응에 그쳐
“가정방문 돌봄 특성 고려한 성희롱 대응방안 모색해야”

기사승인 2023-11-06 17:50:07
6일 ‘가구방문 돌봄노동자 성희롱 피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인권보호 방안’을 주제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주최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사진=신대현 기자

# 남자 어르신을 목욕시키고 옷을 입혀줄 때면 성희롱을 당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해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성희롱으로 인해 1년 정도 일을 하고 그만뒀습니다.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다른 요양센터로 옮겼고, 35일 만에 겨우 다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자 서울요양보호사협회 부회장)

방문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가구 방문 돌봄 노동자 10명 중 3명은 업무 중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돌봄 노동자가 안심하고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할 수 있도록 보호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가구 방문 돌봄 노동자 성희롱 피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인권보호 방안’을 주제로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과 저출생·인구절벽대응 국회포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돌봄 노동자의 성희롱 피해는 심각하다. 지난 4~6월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진행한 ‘가구 방문 돌봄 노동자 성희롱 피해 실태조사’ 결과, 돌봄 노동자 499명(방문요양보호사 387명, 장애인활동지원사 112명) 중 31.7%는 성희롱 피해 13개 유형 중 한 가지 이상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18.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가슴,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가 14.9%, ‘음담패설과 성적 농담’이 13.9%로 파악됐다. ‘포옹, 손잡기, 신체 밀착, 입맞춤 등 신체 접촉을 하거나 강요하는 행위’도 10.5%로 높은 편이었다.

성희롱 행위는 지속적·장기적으로 이어졌다. 성희롱 행위가 2회 이상 반복되거나 지속됐는지 조사한 결과, 41.7%가 2회 이상 반복·지속됐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72.4%는 3개월 이상 성희롱 피해가 계속됐다고 했다. 1년 넘게 피해를 입은 경우도 13.8%에 달했다.

돌봄 노동자가 성희롱으로 고통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지만 대처는 미약하다. 돌봄 노동자 10명 중 6명(59.7%)은 성희롱을 당하면 화제를 돌리고 그 자리를 피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또 84.5%는 피해를 당하면 소속기관이나 외부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혼자 참고 넘어가거나 개인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김송이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정책연구위원은 “가구 방문 돌봄 노동자가 성희롱 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아가 성희롱 근절을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직장 내 성희롱 대응지침은 사업주나 동료 간 성희롱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으로 돌봄서비스 이용자 또는 이용자의 가족으로부터 피해를 겪는 가구 방문 돌봄 노동자의 성희롱 피해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며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 성희롱 피해 경험의 특성을 고려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장기요양법을 개정해 요양보호사 성희롱 금지 조항과 장기요양급여 제공 거부(계약 해지)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임정미 경상국립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35조(장기요양기관의 의무 등)에 장기요양급여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즉 정당한 계약 해지 사유에 ‘성희롱 등의 행위’를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성희롱 행위 발생에 대해 장기요양기관의 장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시정 명령, 과태료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동법 제36조의2(시정명령)와 제69조(과태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보호사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미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권익지원팀장은 “현재 장기요양 현장에서 성희롱이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되는 배경은 국가의 책임이 제도적으로 불분명하고 미약하게 구현돼 있기 때문”이라며 “요양보호사를 바꿨는데도 성희롱 행위가 지속된 사례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건보공단 차원에서 서비스 이용자 이력을 관리하고 이를 돌봄 노동자에게 공유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성희롱 예방교육 확대 등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문정욱 건보공단 요양기준실장은 “복지부, 공단만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기관과 요양기관 간 협업도 중요하다”며 “복지부, 공단, 지자체와 협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창배 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 사무관은 “경기도 권역 장기요양기관 103곳과 함께 요양보호사에게 녹음기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사업 효과성 검토를 통해 내년부터 전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