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짐짝 취급”…대중교통 혼잡도, 달라진 것 없었다

“사람을 짐짝 취급”…대중교통 혼잡도, 달라진 것 없었다

기사승인 2023-11-08 06:00:24
7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내 전광판은 한 칸을 제외하곤 ‘혼잡’이라는 문구로 가득찼다. 사진=유민지 기자

체감기온 영상 1도로 뚝 떨어진 7일 오전 7시45분, 2023년 3분기 최고 혼잡도 193.4%를 기록한 지하철 4호선 내부는 온기로 가득했다. 이마와 등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외투를 벗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손 넣을 공간도 없었다. 지하철 내 전광판엔 ‘혼잡’이라 쓴 빨간색 열차로 가득했다. 길음역부터 동대문역까지 다섯 정거장 동안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은 없고 타는 승객만 있었다. 역에서 멈출 때마다 공간이 더 좁아지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왔다. ‘제발 아무도 타지 않게 해주세요’란 기도가 절로 나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출퇴근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만난 임지민(28‧직장인)씨는 “출퇴근길 지하철 타고 나면 기운 다 빨리고 체력 소모가 크다”라며 “개인, 회사, 국가 입장에서 모두 손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연희동에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정모(28)씨도 “버스에 매달려 갈 때마다 이렇게까지 출퇴근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고 한다. 정씨는 “사람들이 꽉 찬 버스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매달려 갈 때도 있다”며 “종종 버스 뒷문에 끼여 비명 지르는 사람도 봤다”고 전했다.

지난 4월 혼잡한 출퇴근길 대중교통에 대한 안전 우려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으나, 시민들은 혼잡도 개선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는 현행 및 예정 정책들이 대중교통 승객 인파 분산보다 수송 자체에 집중한 대책이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 시민들은 출퇴근시간 서울지하철에 대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7호선(2023년 3분기 최고 혼잡도 164.2%) 탑승객 이모(29)씨는 “간신히 눈만 뜨고 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길에선 ‘살려달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라며 “끼어 탈 공간조차 없어 매번 열차 3대 정도 보내고 타지만, 그렇다고 공간이 여유로워지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경기 김포시 시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4월 김포골드라인에서 실신 사고가 발생한 이후 김포시는 지하철 승객 분산을 목표로 대체 버스 노선을 신설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김포골병라인’이라 부르며 힘겨워했다. 김포골드라인을 타고 출퇴근하는 김모(29)씨는 ‘앞 사람의 호흡에 맞춰 꿀렁거리는 배가 느껴지는 불쾌한 경험’을 매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매 역마다 ‘안으로 들어가주세요’와 ‘밀지마세요’ 대혼란 펼쳐진다”며 “여전히 내리자마자 호흡 곤란으로 승강장 의자에 앉아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종점인 김포공항역에 쏟아지는 사람들을 보면, 이 작은 열차에 이 인원이 어떻게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지하철 혼잡도는 열차 1량당 적정인원 160명을 100%로 계산한다. 혼잡도 185.5%는 14m 열차 1량에 297명이 탑승했다는 의미다. 2016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지하철 혼잡비용 산정과 정책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입석 승객 기준 혼잡도 175%를 넘기면 출입문 주변이 혼잡하고 서로 몸이 밀착되어 팔을 들 수 없다. 혼잡도 200%는 서로 몸과 얼굴이 밀착돼 숨이 막히게 된다.

이에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정기교통량 조사에서 혼잡도 150%를 초과한 노선에 차량을 늘렸다. 2‧3‧5호선은 지난 4월부터 오전과 오후 2회씩, 4호선과 7호선은 지난달 30일부터 각각 출퇴근시간 포함 총 4회, 7호선은 1회씩 열차를 늘렸다. 버스는 출퇴근 맞춤(다람쥐)버스에서 5개 노선을 신설하고, 5개 노선을 증차했다.

지난 1월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그럼에도 시민들이 대중교통 혼잡도 개선에 효과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노선 연장, 재택근무 축소‧중단 등 승차 인원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원역에서 4호선을 탑승하는 전이슬(31)씨는 “지하철 배차간격이 짧으면 그래도 탈만 한데, 배차간격 4분이 넘어가면 사람이 많아져 숨쉬기 답답해진다”며 “사실 4호선은 기존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노선이 길어져 탑승객이 더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4호선은 서울지하철 1~8호선 중 가장 높은 혼잡도를 기록한 노선이다. 지난해 3월 진접선이 개통하며 혼잡도 162%(2022년)에서 185.5%(2023년)로 늘어났다.

내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혼잡도 해소 방안도 나왔다. 서울교통공사는 내년 1월부터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4·7호선 열차 2칸을 대상으로 좌석을 없애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 반응은 부정적이다. X(구 트위터)에서는 “사람을 짐짝 취급한다. 당고개역부터 오이도역까지 서서 가라는거냐”, “현대판 노예송수선이다. 얼마나 많이 실어 가는지만 생각하냐”, “지하철 요금 올린 것도 화나는데 좌석까지 없애냐”, “이 정책 만든 사람은 지하철 타고 출퇴근 안 하는 게 분명하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혼잡한 지하철을 피하는 방법은 출근 시간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3년차 직장인 박모(28)씨는 혼잡한 대중교통을 피해 매일 오전 7시40분 회사에 도착한다. 박씨는 “혼잡한 출근길을 피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나, 결국 남들 다 가는 시간에 안 가는 게 제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1분이라도 덜 있고 싶은 건 직장인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라며 “숨쉬기도 힘든 지하철에서 매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가는 것보단 이게 낫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는 ‘인파 분산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대책들은 사람을 분산시키기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타는 방법에 가깝다”라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출퇴근 시간엔 운행 간격을 좁혀서 차를 자주 운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증차엔 인건비가 든다”라며 “적자를 무시할 수 없으니 자동화 추진 속도를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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