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영을 오가는 정객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권력의 향배만을 따라 이동하는 ‘철새 정치인’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새로운선택’ 창당 준비 위원회 대표인 금태섭 전 의원은 지난 10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를 두고 제3지대 신당을 함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선거철만 되면 되돌아오는 대표적인 정치권 인사다. ‘변심’의 아이콘으로 꼽히기도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 이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정권의 요직을 꿰차왔다. 경제민주화 전문가라는 이력을 무기로 당을 옮겨다니며 주가를 높였다. 민정당, 민자당, 새천년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등 비례대표만으로 5선을 지내는 기록을 세웠다.
여러 정치 거물들과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왔다. 2011년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들어와 이듬해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물심양면 도왔지만, 등을 돌렸다. 2016년엔 또 다시 진보정당으로 유턴해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했지만 사이가 틀어졌다. 김 전 위원장 스스로도 저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운 2012년 대선과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치른 2016년 총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 “두 번의 배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때는 안철수 의원의 ‘정치 멘토’로 불렸지만 이마저 악연이 됐다. 권력의 단맛을 좇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보는 반감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
지난 3·8 대선을 앞둔 당시에도 김 전 위원장의 ‘오락가락 행보’는 이어졌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 직후 지지율이 급등하자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별의 순간은 김 전 위원장이 수십 년 전부터 대권 잠룡을 칭할 때 즐겨 쓰던 표현이다. 또 “윤 총장만큼 현 정부에서 용감한 사람이 없다. 정무적 감각이 상당하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출신이 대통령 된 전례가 없다”며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후에도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됐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전 부총리 등에 대한 평가를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이준석 전 대표도 김 전 위원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그는 과거 박근혜 정권 시절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2016년 탄핵 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탄핵에 동조했다. 결국 2017년에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는 ‘박근혜 키즈’란 평가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저는 하나의 소모품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해관계는 있어도 종속관계는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선을 그었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9년엔 손학규 당시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모질게 쫓아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신당’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난관으로는 자금력, 인물 및 조직, 신당 실패 사례 등 현실적인 요소가 꼽힌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양당에 대한 실망감에 의존한 정당이라면 유의미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존재감은 미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배신자’ 낙인도 문제다. 분열 정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보수 진영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수층 정서상 당을 배신하고 떠난 인사에 대한 앙금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경향이 있는 탓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유 전 의원은 분당을 선언하고 개혁보수 신당인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신뢰가 남아있던 TK 당심은 돌아섰다. ‘배신자’라는 꼬리표도 따라 붙었다. 현재까지도 보수 지지층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전 대표에 호의적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에서 이준석·유승민 바람은 전혀 불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윤석열정권은 대구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고 이준석은 대구와 전혀 연고가 없다. 같이 거론되는 유승민은 아직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적인 연명을 위한 돌파구로서 계획한 신당 창당은 효과가 적다”라며 “무당층과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선 참신한 인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 한,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