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해도 반복…애니멀 호더, 막을 방법 없다

구조해도 반복…애니멀 호더, 막을 방법 없다

기사승인 2023-11-27 06:00:02
지난 2021년 서울 한 가정집에서 발생한 애니멀 호딩 현장에서 발견된 고양이 39마리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페이스북

# 집 문을 열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와 분뇨로 가득한 집. 2년 전 최민경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고양이 구조 요청을 받고 서울 강남구 한 다세대 주택을 찾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 집 안에 고양이 39마리가 살고 있었다.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는 사육 능력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의미한다. 시작은 1~2마리다. 하지만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 길러 자가 번식하거나, 동물이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동물을 입양해 동물이 늘어나는 사례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문제지만, 애니멀 호더를 동물 학대로 처벌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자유연대, 동물권행동 카라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충남 천안시 한 아파트에서는 죽은 고양이 500여마리와 살아있는 고양이 28마리가 발견됐다. 이 집에서 나온 고양이 사체와 기물 무게는 무려 7.5톤에 달했다. 지난 6월 경기 파주시에선 50마리의 개가 중증 피부병에 걸린 채 발견됐다. 지난 2021년엔 충남 태안군에서 방치된 개, 고양이 80여마리가 발견됐고, 2019년엔 경기 평택시 한 단독주택에서 치와와종 60여마리가 사육되다 발견됐다. 

애니멀 호딩 행위는 사실상 동물 학대다. 대부분 현장에서 발견된 동물들은 기본적인 관리도 받지 못 한 상태다. 최민경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고양이 39마리를 구조 할 당시, 집안에 쓰레기와 고양이 배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악취가 심했지만, 공기도 안 좋아 고양이들이 호흡기 질환에 걸려있었다”라며 “발톱 또한 잘라주지 않아 계속 자라나다 못해 발로 다시 파고 들어가 있었고 털은 뭉쳐서 갑옷 같은 상태였다”라고 설명했다. 카라가 지난 6월 파주에서 구조한 50마리의 개들은 5~6년 전부터 피부병에 걸린 채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경기 파주시에서도 50마리의 개가 중증 피부병에 걸린 채 발견됐다. 동물권행동 카라 페이스북 


‘권고’에 그친 동물복지 현실

현행 동물보호법 상으로 동물 소유자는 동물의 사육과 관리에 힘써야 한다. 동물보호법 제7조는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운동‧휴식‧수면을 보장하고, 질병‧부상을 입을 경우 신속한 치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동물에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도 2020년 8월부터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한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에 속한다.

그러나 애니멀 호더를 동물 학대로 처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호딩의 결과로 반려동물이 죽음에 이를 경우에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사료와 물 공급, 질병‧부상 신속한 치료 등 지켜야 할 규정이 있으나 권고 수준이다. 또 질병. 상해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학대로 인정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 막아야 하는데, 질병과 상해가 발생한 후에야 긴급 조치가 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 사람이 50마리, 500마리 등의 동물을 돌보면 의도적으로 상해를 입히지 않아도 복지 수준이 안 좋다”라며 “동물 관리 의무라는 게 있으면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제지할 수 있지만, 법은 권고 수준에 그친다”라고 꼬집었다.

해외에선 개인이 사육할 수 있는 동물 개체수 제한과 함께 애니멀 호더에 대한 처벌도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선 한 명이 개 3마리 이상 키울 수 없고, 호주에선 반려견을 4마리 이상 키우려면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은 애니멀 호더를 정신 문제로 보고 정신과 의사와 협업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독일에선 애니멀 호더 문제가 발생할 시 동물을 모두 압수한 뒤 향후 동물을 키우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파주시에서 50마리의 개가 중증 피부병에 걸린 채 발견됐다. 동물권행동 카라 페이스북 


‘변화’ 없으면 반복될 문제

애니멀 호더는 저장 강박증 등 심리 문제로 볼 여지가 있어 치료받지 않으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학대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 한 채 집착하며 동물을 모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을 구조하거나 사체를 버리거나 하면, 이들은 애착 대상을 잃어버려 트라우마를 앓게 된다”라며 “이후 한 번 경험했기에 더 빨리 동물을 모으게 된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도 “동물 단체에서 구조해도 암수 한 마리씩 남겨두려는 분들이 실제로 많다”라며 “개를 못 키우게 할 방법이 없기에 결국은 1년 이내에 반복된다”라고 지적했다.

동물을 쉽게 키울 수 있는 환경도 애니멀 호더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민경 카라 활동가는 “처음부터 동물이 수십, 수백 마리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한두 마리씩 키우다가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서 자체 번식으로 늘어나거나, 유기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소문이나 주변에서 동물을 데려다주면서 애니멀 호더가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사육할 수 있는 동물 수 제한과 함께 키우기 전 자격 요건에 대한 심사 혹은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동물보호의 핵심은 동물이 질병과 상해로 죽음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는 결과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처벌보다 예방이 가능한 법안이 필요합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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