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외환파생상품)와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이후 또 다시 은행이 판매한 옵션 상품에서 대규모 투자손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는 KIKO나 DLF와 같이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수익과 손실이 비대칭적인 고위험 상품이다. 은행이 판매한 상품에서 문제가 반복되자 이를 허용한 당국을 향해서도 책임론이 제기된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은행이 모두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ELS는 법적으로 증권사만 판매할 수 있어 은행들은 이를 신탁에 담아 ELT(주가연계신탁)로 판매했다. 사실상 동일 상품이라고 보면 된다.
손실 우려는 은행들이 2021년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서 발생하고 있다. 홍콩H지수는 당시 1만2000선에서 현재 6000선까지 반토막난 상태다. ELS는 기준이 되는 지수나 개별 종목의 가격의 변동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통상 기초자산이 한번이라도 낙인(Knock In) 가격에 도달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낙인이 60%인 경우, 기초자산 가격이 40%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다만 상품에 따라 낙인에도 만기일에 기초자산 가격이 수익상환 조건을 만족하면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
KIKO는 환율, DLF는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다는 점이 ELS와 차이다. 반대로 이들 상품은 기초자산의 옵션거래로 수익이 발생하고, 기초자산이 기준점을 벗어났을 경우 손실이 원금 전액에 달하거나 계약체결 금액을 넘어서는 등 수익과 손실이 비대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KIKO는 환율 급등에, DLF는 금리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투자자 손실을 불러왔다.
복잡한 구조와 함께 기초자산 변동에 따라 손실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의 ELS 판매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19년 DLF 사태 직후 열린 국정감사에서 은행의 고위험 상품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지적도 있었다.
은행의 고객층이 현실적으로 옵션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기본적으로 안정추구형의 고객들이라는 이유에서다. 은행이 일반 사기업과 달리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또한 당시 판매를 금지하지 못 한다면 손실률 제한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지적에 은행의 ELS 판매 금지를 추진했다. 금융위원회는 DLF 재발방지대책으로 은행이 ELS 등 파생상품을 신탁에 담아 판매하는 행위를 제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은행들의 반발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ELS 판매를 계속 허용했다. 이는 반복되는 사고에도 당국이 문제 개선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9년 DLF 사태에 따라서 금융위원회가 고위험 상품에 대한 투자자 보호 방안을 발표를 했다”며 “당시 발표한 방안 가운데 하나가 은행의 고난도 상품 판매 중지를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당시 사모만 중지 시키고 공모는 중지를 안 시켰다”면서 “ELS를 두고 은행이 반발하면서 당국의 계획이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사태에는 금융당국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당국은 은행이 적합하지 않은 상품을 팔게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전날 “과거에도 파생결합펀드(DLF)나 라임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등 은행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도 상품을 취급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후 비예금 상품에 대해 판매 시 지켜야 할 절차 등을 강화해왔다”며 “ELS도 내부통제 등 기본적인 규율체계,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면 판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