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가면 마약 전문가 돼요”…치료 못 해 재범률 오른다 [약도 없는 마약⑥]

“교도소 가면 마약 전문가 돼요”…치료 못 해 재범률 오른다 [약도 없는 마약⑥]

기사승인 2023-12-18 06:05:01
마약엔 치료 ‘약’이 없다. 마약을 끊어야만 호전된다.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약’도 없다. 치료·재활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국내 인프라는 열악하다. 해마다 마약 중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마약 치료 실태를 짚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청소년 때 마약을 접한 김재현(48)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중독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4세 때 대마초, 21세엔 필로폰을 시작한 김씨는 24세 때 처음 교도소를 갔다. 1년6개월 수감 뒤 2달도 버티지 못하고 감옥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첫 교도소 생활 이후 20년이 흘렀다. 2019년 2월 석방됐을 때 나이는 44세, 마약 전과는 10범이었다.

# 정윤수(가명·53)씨도 4년간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201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나왔지만, 다시 마약에 손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4일이었다. 이후 교도소에서 석방된 뒤에도 30일을 버티지 못하고 또 수감됐다. 

상당수의 마약사범들이 ‘투약-수감-투약’의 회전문을 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중독 치료 기회 없이 형벌만 받는 탓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이들에게 중독 치료·재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마약 범죄로 교도소에 간 후 석방되면 마약 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안내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마약류중독자 치료보호규정 제9조에 따르면 교정시설의 장은 중독자를 석방할 때 그 중독자에게 판별검사 및 치료보호에 관한 사항을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마약사범들은 이같은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씨와 정씨 모두 “석방될 때 중독 치료에 대해 안내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중독 치료 안내가 이뤄져도 연계된 치료기관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다. 범법 정신질환자를 격리·수용하는 기관인 국립법무병원의 조성남 원장은 “석방 후 치료보호 안내는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법무병원은 법무부 소관이고, 치료보호기관은 복지부 소관이라 연계할 체계가 없다. 또 국립병원으로 연결하려 해도 중독자를 치료할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마약사범 사이에선 교도소에 가면 마약이 더 생각난다는 말도 나온다. 마약사범을 한 공간에 모아두다 보니, 서로 마약 관련 정보와 경험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도소 가면 마약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마약사범끼리 방을 같이 쓰다 보니 경험담을 나누는 건 물론이고, 상선(마약 공급책) 정보도 공유했다. 마약이 더 생각났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마약사범의 재범률이 35%에 달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의 특성상 처벌만으론 재범을 막기 어렵다며 치료·재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원장은 “교도소에 간다고 해서 마약 중독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약사범은 중독이라는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으면 재범을 막기 어렵다”고 했다. 법무법인 진실 소속의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도 “치료보호 시행령에 따라 중독자를 석방할 때 치료보호에 관한 사항을 안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치료·재활기관을 안내하는 브로셔를 제작하고, 치료보호에 대한 사항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면 실효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중독 치료 기회는 소수에게만…실효성 ‘물음표’

마약사범들에게 중독 치료를 강제하는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단속된 마약사범은 2만명이 넘는데, 중독 치료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검찰은 처벌보다 치료가 재범 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마약 중독자에게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마약사범은 14명에 불과했다. 2021년엔 22명, 2020년엔 3명이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법원이 마약사범들에게 치료명령을 내린 경우 역시 드물다. 법원은 마약사범이 마약류 치료보호기관에서 마약 중독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입원치료를 의뢰할 수 있다. 지난해 치료보호 인원은 421명으로, 2021년(280명) 대비 50.4%로 크게 늘었지만, 이 중 검찰 의뢰자는 14명으로 전체의 3.3%에 불과하다. 검찰 의뢰 치료보호는 2021년엔 1명, 2020년엔 9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모두 자의로 치료받고 싶다고 밝힌 경우다. 

검찰 의뢰 치료보호 인원이 적은 이유는 치료보호기관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한 탓에 지난해 치료보호기관 21곳 중 19곳은 입원 환자를 거의 받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치료보호기관이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해서 검찰이 치료보호를 청구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해 치료보호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법무병원도 검찰이 치료감호 청구를 해야만, 수감돼 치료·재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치료감호 인원은 18명에 불과했다. 조 원장은 “법조인들도 마약이 질병이라는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마약사범 중 50% 정도는 단순 투약사범이다. 공급사범은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맞지만, 투약사범은 중독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으니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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