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단독 표결로 국회 문턱을 넘은 ‘이태원 특별법’이 기로에 놓였다. 정부여당이 특별법을 두고 ‘정쟁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거부권 건의 등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거부권 사용 전 여야 재협상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태원특별법은 지난 9일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 표결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여야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을 놓고 본회의 전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불발됐다. 특조위 구성과 권한, 상임위원 추천 방식 등 세부 사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특별법은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을 바탕으로 한 ‘민주당 수정안’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9일 본회의 제안설명에서 “국민의힘의 고민과 노력도 반영한 수정안”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우려해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안은 정부여당의 요구를 일부 반영해 △특조위원 구성(국회의장 3명, 여야 각 4명씩 추천) △전체 활동 기간을 최대 1년 3개월로 단축(활동기간 연장 기한을 최대 6달에서 3달 이내로 단축) △압수·수색 영장 청구 요건 강화 △특조위 활동기간 동안 이태원 참사 관련 범죄행위의 공소시효 정지 조항 삭제 등의 방식으로 조정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문턱을 넘은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정쟁용’이라고 비판했다. 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1일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며 “발의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야당의 일방적인 주도로 처리된 절차적 타당성이 결여된 법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여당은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사용을 놓고 고심하는 중이다. 앞서 야당 단독 처리로 국회를 통과한 다른 법안과는 다른 태도다. 쌍특검법의 경우 본회의 통과 후 정부로 이송되기도 전에 대통령실에서 거부권 행사 방침을 알렸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통과 당시에도 ‘거부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경남도당 신년인사회 뒤 기자들과 만나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원내에서 여러 가지로 신중하게 논의해 볼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이 거부권 사용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총선 역풍’ 우려 때문이다. 쌍특검법에 이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연이은 거부권 사용은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희생자가 많이 존재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전했다.
여야가 특별법과 관련해 어느 정도 의견을 모았다 막판 합의에 실패했던 만큼 본회의 통과 이후 재협상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협상이 결렬된 직후 기자들에게 “종전 사례에 따르면 법안이 단독 통과된 이후라도 협상한 사례가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앞선 거부권 행사 사례와 달리 거부권 행사를 바로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조위 활동 개시 시점도 총선 이후고, 특검 요구 권한도 삭제됐기 때문에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총선 부담을 크게 덜었을 것”이라며 “현재 쌍특검법 거부권 사용으로 인해 여론이 좋지 않으니 다른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무조건 거부권부터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