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천안호두과자 명성을 지키는 길

[조한필의 視線] 천안호두과자 명성을 지키는 길

기사승인 2024-01-15 08:33:44
2014년 천안박물관 특별전에서 일제강점기 천안역 앞 식당 광고지가 소개됐다. 도시락 포장 광고지로 추정되는데 호두모양 그림과 함께 ‘명물 くるみ燒’라는 홍보문구가 적혀 있었다.

くるみ燒는 호두(구루미) 구운 것을 말한다. 호두과자 원조로 볼 수 있다. 밤·은행은 모를까 호두를 구워 먹는 일은 없으니까. 광고지에 장호원~장항 경남(京南)철도 노선도까지 실린 걸 볼 때, 그 노선이 개통한 1931년 이후 제작된 것이다. 천안호두과자의 “1934년 탄생”이 조금 더 이른 시기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1일 천안시가 호두과자 품질인증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전국적 이목을 끌었다. 시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타 지역 호두과자와의 차별화를 위해, 천안에서 일정한 기준에 의해 우수하게 제조한 호두과자를 인증하는 호두과자 품질인증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품질인증은 천안 호두과자업체만 받게 하고, 천안만의 우수성을 입증할 일정한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호두과자 발상지로서 응당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천안시는 타지역 호두과자와의 차별화를 위해 천안호두과자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네이버 캡처

안흥찐빵은 이미 2016년부터 품질인증제를 시행했다. 시행 배경은 천안과 비슷할 듯하다. 다른 곳에서 안흥찐빵으로 판매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 지역 업소 상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품질인증제 추진에 두 가지 노파심이 든다. 호두과자는 현재 전국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데 천안이 확연히 차별화된 품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래야만 천안시의 품질인증제 실시가 당위성을 갖는다. 또 그 품질 인증 기준은 합당하게 정할 수 있을까.

차별화의 가장 쉬운 방법은 국산 재료를 쓰는 것이다. 주요 재료인 밀과 팥을 우리 농산물로 해야 한다. 천안시는 오래전부터 우리 밀과 팥 재배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물론 업소는 원가 상승 부담이 생긴다. 하지만 천안호두과자 품질이 우수한 게 알려지면, 값을 높여도 잘 팔릴 것이다.

국산 호두는 너무 비싸 넣을 수 없다는 건 모두 안다. 약 20년 전 일이다. 천안역 옆 학화호두과자점에 과자를 사러갔다고 크게 놀랐다. 심복순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다. 호두알 박스에 ‘MADE IN CALIFORNIA’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미제 호두를 넣고 있었다. 종업원은 “천안호두는 비싸서 쓸 수 없다는 걸 아직 몰랐냐”며 당연하듯 말했다. 배심감을 느꼈다. 천안호두과자니까 응당 천안호두를 쓰는지 알았다. 이에 ‘천안호두과자에 천안호두 없다’라는 기사를 썼다. 할머니가 호두공급업체 사장을 시켜 불편함을 나타냈던 기억이 있다.

2014년 천안박물관 특별전에서 소개된 일제강점기 천안역앞 식당 광고지. 호두 모양 그림과 함께 ‘명물 くるみ燒(구루미쇼)’라고 적혀있다. 천안박물관 특별전 도록

시는 품질인증제 시행을 발표했던 날 호두과자 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서 천안 프랜차이즈 업체의 타지역 매장까지 인증해줄 것인가가 문제됐다고 들었다. 먼저 의견을 내자면 외지 매장의 인증은 “품질인증제가 대형업체만 배불린다”는 비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품질인증제를 시작하면 미인증업체는 타격을 받게 된다. 안흥찐빵은 반죽을 손으로 직접 빚어 온돌방에서 숙성시키고, 또 국내산 팥을 써야 하는 게 인증 기준이었다. 2018년 당시 23개 업체 중 10개 업체만 인증을 받았다.

천안은 70여 개 호두과자 업체가 있다. 안흥찐빵만 아니라 경주빵 등 다른 지자체 사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시는 설문지를 만들어 전 업체 의견을 듣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 천안호두과자 첫 출현에 대해선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long-standing-shops/story/9214)'를 참고할 만 하다.

/천안·아산 선임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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