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소비도 가성비…해외로 눈 돌리는 청년들

여행도, 소비도 가성비…해외로 눈 돌리는 청년들

기사승인 2024-02-12 12:00:02
휴가철인 지난 7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이 해외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 지난해 4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온 직장인 이지연(28·가명)씨는 올해도 3차례 해외로 떠날 예정이다. 특별히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국내 물가가 높아져 미주·유럽을 제외하면 웬만한 해외여행은 국내 여행과 비용이 비슷하다는 이유가 크다. 이씨는 “기성세대에겐 해외여행이 큰맘 먹고 특별한 날에 가는 것이지만, 청년들에겐 제주도만큼 쉽고 저렴하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견문을 넓힐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청년들이 높아진 국내 물가에 대한 차선책으로 해외 시장에 지갑을 열고 있다. 국내외 경계 구분 없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며 소비하는 분위기다.

국내 생산과 고용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국내 소비보다 해외여행과 해외직접구매(직구)등 국외 소비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국외소비지출(국내 거주자의 해외소비)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5.9%의 증가율을 보였다. 2분기 85.1%, 3분기 80.8%, 4분기 82.0%로 지난해 대비 국외소비지출 증가율 80%대를 유지했다.

청년들에게 해외직구, 구매대행 등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을 활용한 상품 구입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블랙프라이데이(미국), 광군제(중국), 박싱데이(영국) 등 해외의 대규모 할인 행사에 맞춰 구매 계획을 세우는 건 물론, 최근엔 저렴한 중국발 이커머스 플랫폼 구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9월 온라인쇼핑동향 및 3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 및 구매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해외 직구 금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4.8% 늘어난 1조63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 판매 금액은 10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TEMU)에 접속하니 다양한 추천 제품이 나왔다. 테무 홈페이지 캡처

“중국산? 짝퉁? 오히려 좋아”

1만원 넘는 제품은 거의 없었다. 지난 7일 직접 접속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TEMU)엔 1000원 이하 제품도 수두룩했다. 양배추 채칼, 두유 제조기, 방수 신발 커버, 만두 제조기, 병뚜껑 오프너 등 국내 쇼핑몰엔 없는 낯선 아이디어 상품들도 눈을 사로잡았다. 테무에서 판매하고 있는 차량용 진공청소기(7000원대)와 비슷한 상품을 국내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찾아보니 3만원대로 약 5배 정도 비쌌다. 무료배송은 기본이다. 이지연(28·가명)씨는 “어차피 한국에서 판매 중인 물건도 다 중국산이라서 결국 가격 메리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창기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은 ‘짝퉁 천국’이라고 불리며 국내 시장 안착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청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지난해 중국 쇼핑 앱을 통해 한 일본 캐릭터 상품을 구매했다는 직장인 이모(24)씨는 “친구 추천으로 샀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정품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다. 무엇보다 가격이 엄청 저렴했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는 점점 오르고 월급은 안 오르는데,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으면 이용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며 “온라인 이용에 익숙하고 해외물가 파악이나 직구에 능한 청년층에서 더 자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이 해외 여행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가성비·가심비 다잡는 해외여행”

국내와 해외의 경계가 흐릿해진 건 물건만이 아니다. 여기에 국내 물가 상승으로 관광 지출 금액이 오르자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나 엔화 가치가 하락한 일본으로 떠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들 사이에선 “주말에 우동 먹으러 일본 가자”, “추우니까 동남아 갔다 오자”는 말까지 나온다.

청년들은 해외여행을 비용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여행비용이 올라 해외여행과 큰 차이가 없어졌고, 그러면 해외여행이 더 낫다는 반응이 많다. 직장인 김예인(29·가명)씨는 2022년 제주도와 방콕을 모두 3박4일로 다녀왔다. 하지만 여행비용은 두 곳 모두 60만원대로 큰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방콕도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많이 올랐다지만 5성급 호텔에서 숙박했는데도 저렴한 가격이었다”며 “물가가 오르며 국내 여행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음식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해외을 가는 게 만족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 관광에 들어가는 비용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급격하게 상승했다. 지난해 제주관광공사가 공개한 ‘2022년 제주특별자치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 관광객의 1인당 소비 지출은 66만1371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6만9039원과 비교해 약 43.3%나 증가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내국인이 제주 여행 시 가장 만족스럽지 않은 점으로 비싼 물가(53.4%)가 꼽히기도 했다.

전문가는 합리를 추구하고 절약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찾는 건 불경기에 대처하는 청년들의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김시월 건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득이나 능력이 안 되는데 과소비를 하면 문제가 되지만, 이는 청년들이 저소득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30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SNS 정보에 상당히 민감하고,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 굉장히 활발한 세대”라며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일상의 소소함과 행복을 누려야 더 힘차게 일할 수 있다는 걸 느꼈기에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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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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