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주요 주택사업으로 꼽히는 ‘모아타운’의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모아타운을 두고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나이 든 건물주와 젊은 빌라 투자자, 원주민과 외지인 간 다툼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100곳 목표’로 선정지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시는 투기 우려나 주민 반대가 심한 지역을 대상지 선정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모아타운을 둘러싼 갈등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재개발 반대” 잡음 커지는 모아타운
“아이고, 제발 도와주세요. 임대 소득으로 사는데 이젠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13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모아타운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 20명이 넘는 주민들이 모였다. 이곳 둔촌동은 지난해 12월8일 강서구 화곡동, 관악구 청룡동 등과 함께 모아타운 대상지로 지정됐다. 이날 모인 주민들은 모아타운으로 선정된 이후인 지난 1월 ‘모아타운 환영’ 현수막을 걸린 것을 보고 난 뒤에야 추진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날부터 모아타운으로 묶이는 3개 구역에서 2개월간 모은 모아타운 반대 서명만 48~50%에 달한다.
답답한 아파트가 싫어 이 동네에 단독주택을 짓고 터를 잡았다는 90대 노인 A씨는 “모아타운이 되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냐”며 울상을 지었다. 모아주택 사업이 진행되면 서울시청 앞에서 ‘분신’까지 불사하겠다는 격한 반응까지 여기저기서 나왔다. 주민 B씨는 “아파트는 세를 주고 단독주택에 사는 노인들도 많다”며 “아파트를 원하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수억원에 달하는 분담금도 발목을 잡는다.
오세훈표 정비사업인 모아타운 사업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의 노후 저층 주거지를 하나로 묶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시의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모아타운으로 지정되면 정비계획 수립, 조합추진위 승인, 관리처분계획 인가 절차가 생략돼 통상 8~10년 이상 소요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기간을 2~4년으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또 필요시 용도지역 상향(1·2종 일반주거→2·3종 일반주거), 층수 완화(2종 최고 15층) 등 인센티브를 주고, 주차장·공원 등 기반시설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 사업성 때문에 개발이 어려웠던 저층 노후주거지에서 인기 있는 이유다. 특히 사업 시행 예정지별로 주민 30% 이상의 동의(노후도 50%)만 받으면 공모 신청할 수 있을 정도로 기준이 낮다. 다만 늘어난 용적률 일부는 기부채납(공공기여)해야 한다.
제도가 도입된 지 2년. 벌써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 85곳에 달하지만, 지금도 사업 예상지와 이미 선정된 지역 곳곳에서 주민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다. 대지 지분이 큰 토지 등 소유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76조에 따르면 단독주택 소유주든 소형 빌라 소유주든 재개발 이후 아파트 입주권은 1개만 받는다. 재건축 사업시 가격의 범위 또는 종전 주택의 주거전용면적 범위 내에서 2주택을 공급(1+1 입주권)할 수 있다. 이마저도 전용 60㎢ 이하만 분양이 가능하다.
모아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강남 3구 주택 소유주 연합이 주축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 집회를 연 이후 연합구역이 집회 당시 2배인 24개동으로 늘었을 정도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둔촌동 모아타운을 반대하는 주민 C씨는 “동의율 30%만 되면 모아주택 공모가 가능하다. 토지가 넓은 소유주만 손해인데, 반대하는 집까지 모조리 모아타운으로 선정됐다. 이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가나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으로 노후 생계를 이어가는 소유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70대 주민 D씨는 “평생을 열심히 벌고 세금도 많이 냈다”며 “임대 소득으로 살아가는데 밥줄을 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 부족도 문제다. 모아타운 사업에서 세입자 이주비 지원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 개정안’에 따른다. 사업시행자가 상가나 주거 세입자의 이주비와 영업 보상금을 지원하면 용적률을 완화하거나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줄여주는 것이다.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집주인이 원치 않으면 세입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이주해야 한다.
신청 전부터 불탄다…‘모아타운’에 두 쪽 된 동네
모아타운을 추진하는 과정에 마을이 두 쪽이 나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은 모아타운 신청도 전부터 주민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전동 주민 E씨는 “(큰 대지 소유주는) 갭투기만 배 불리고 원주민은 손해 보는 시스템”이라며 “반대율이 높아 진행이 안될 수도 있는데, 매물은 씨가 말랐다. 언제 될지도 모르는데 부동산 거래만 반복되고 있다. 마치 폭탄 떠넘기기 같다”라고 우려했다.
삼전동 모아타운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상단(63.9%)과 하단(54.8%) 반대율은 50% 이상이다. 지역 내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은 다른 지역과 달리 현재 삼전동의 경우 매물이 거의 없는 상태다. 여전히 매물을 찾는 외지인도 많다고 한다. 그사이 거래 가격은 껑충 뛰었다. 지난 2018년 9000만원대에 거래된 3평짜리 원룸은 지난해 2억원대 중반에 거래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립·다세대 주택 소유주와 투자 목적으로 매물을 사들인 소유주들은 모아타운 추진을 찬성한다. 삼전동 모아타운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찬성률은 45% 정도다. 삼전동 모아타운 추진위원장은 “(재개발로) 주거환경이 정비가 되면 살기 좋고 수익이 된다. 재개발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모아주택은 낮은 노후도 기준 등으로 재개발을 꿈도 꾸지 못했던 곳에서 재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노후된 주택을 가진 서민이 아파트를 꿈꿀 수 있는 사다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민 갈등에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모아타운뿐만 아니라 모든 재개발·재건축 후보지에는 외지인이 많이 들어온다. 투자자가 들어와야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소위 강남과 같이 소득 수준이 높고 반대가 심한 지역일수록 재건축·재개발이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 반대 심하면 안 한다”는 서울시-자치구
서울시도, 자치구도 투기 우려가 높거나 주민 반대가 심하면 모아타운이 추진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삼전동 지역 모아타운 관련 반대 민원은 현재까지 2270건이 접수됐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찬반 갈등이 첨예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모아타운 추진 주체인 서울시의 기본 방침이 주민 갈등 및 투기 우려 지역은 제외하고 있어서 해당 지역 추진은 현재 시점으로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아타운으로 선정된 둔촌동을 예로 들며 “모아타운은 주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아타운으로 지정되더라고 조합은 주민들이 설립해야 한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동의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아타운은 재개발처럼 구역이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하는 게 없다”며 “관리 계획 수립 목적에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관리 지정된 이후 3년 이내 조합 설립 인가 신청이 안되는 경우 해지할 수 있다. 이를 구청이 검토해 해제가 필요하다고 시에 요청하면 위원회를 열고 심의를 거쳐 해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시 관계자는 부동산 중개업소 또는 업체 등이 주민을 오도하거나 허위 사실을 전달하는 경우는 단속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모아타운이라는 폭탄을 던지고 이를 관람하는 구경꾼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삼전동 주민 김모씨는 “선정이 된 것도 아닌데 주민들만 반으로 찢어졌다”며 “모아타운 신청도 안 됐는데 왜 반발하느냐고 (시·구청은) 말하지만, 주민들이 이렇게 분열되고 싸우는데 이런 혼란을 없애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둔촌동 한 주민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결론도 없이 (조합 설립까지) 3년을 무작정 기다리라는 건 너무 한다”며 “시와 구에서 개입해 민원들을 받아주고 찬반 양측에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는다면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