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텃밭이란 것도 옛말이야. 이젠 꼭 그렇지도 않아.”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만난 70대 김모씨는 지역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서울 중·성동갑은 이번 총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승부처인 ‘한강 벨트’에 속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판세 탓에 주요 격전지로 꼽힌다. 그만큼 여야의 사수·탈환 싸움은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현희 후보에게 지역구 수성을 맡겼고, 국민의힘은 윤희숙 후보를 앞세워 승부수를 던졌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고, 특별한 지역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성동갑은 야당 성향이 짙은 지역구다. 18대 총선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이 승리했고,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9대 총선 때부터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다만 민주당이 방심하긴 이르다. 최근 ‘보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2년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특히 성수동을 중심으로 초고가 아파트가 들어서고, 왕십리·행당동·도선동 등 뉴타운 집값이 오르면서 보수세가 강해지고 있다.
어느 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아닌 만큼, 중·성동갑 일대를 돌며 만난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윤희숙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민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전문성’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윤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공약으로는 △성수지구 TAMA(기술·광고·미디어·정보) 밸리 조성 △왕십리 역세권 상업·교통기능 활성화 △지하철 3호선 지선 신설 등을 내놨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김모(58)씨는 “당연히 윤희숙 후보 뽑을 것”이라며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고, 개인 이슈가 있을 때 깨끗하게 책임지고 ‘선당후사’했다.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현희 후보는 투사(鬪士) 이미지에 가깝다. 지역구 일을 잘할 것 같진 않다”라고 덧붙였다. 왕십리역에서 만난 70대 이모씨도 “윤희숙 후보가 경제로 유명하지 않나. 경제 살리려면 여당 후보 뽑아줘야 된다”라고 했다.
일부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천 배제로 불거진 ‘문·명갈등’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 ‘마장동 토박이’라고 밝힌 50대 박모씨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번 공천 문제로 하도 시끄러워서 민주당에 실망이 크다. 지역 연고도 없는 전현희 후보 메리트가 뭔지 모르겠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전현희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민들은 주로 ‘민생 전문가’ 이미지를 지지 배경으로 꼽았다.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인 전 후보는 문재인 정부 시절 권익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번 총선 지역구 공약으로는 △그린 정원도시 성동 조성 △왕십리역 일대 ‘동북부 교통·경제 중심 허브’ 조성 △뚝섬역·성수역 일대 ‘패션·뷰티, IT·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 복합첨단산업밸리’ 조성을 내걸었다.
40대 이모씨는 “너무 물가가 올랐다. 서민들이 살기 어렵다”며 “정권 심판하려면 민생 살릴 전현희 후보 찍어줘야 한다”라고 했다. 김모(72·여)씨는 “여기는 원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전 후보가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연령대별로 답변이 달라지기도 했다. 장년·노년층은 “후보를 막론하고 무조건 민주당 찍는다(65세)”, “누가 후보 보고 뽑나. 당 보고 뽑는다(71세)”라고 답변하는 등 ‘콘크리트 지지’ 성향이 비교적 강한 반면 젊은층에서는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스윙보터’(Swing voter·부동층)’가 많았다.
상왕십리 재개발된 지역에 거주하는 김성현(30)씨는 “출마한 후보들이 ‘모 아니면 도’ 느낌”이라며 “두 후보 다 동네에 갑자기 꽂힌 사람 아닌가. 낙하산이란 느낌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나와야 했는데, 안 나와서 성동 자체가 버림받은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박모씨도 “두 후보 모두 이번에 처음 이 지역에 나선 인물들이라 누굴 찍을지 모르겠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지역 잘 살게 해줄 사람 뽑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