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전세사기’ 세입자 일상 파괴…빌라왕, 배후 징역 8년

‘80억 전세사기’ 세입자 일상 파괴…빌라왕, 배후 징역 8년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 전세 사기
빌라 기피 현상 등 사회 파장 지속

기사승인 2024-04-24 10:31:29
‘빌라왕’ 여러 명의 배후로 지목된 A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2021년, 부동산 어플을 통해 박모씨는 신축 오피스텔 1.5룸을 보증금 2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5000만원의 현금에 은행 대출을 받았다. 임대사업자 보증보험에 가입한다던 집주인을 믿었으나 집에 거주한 지 2년이 지나기도 전에 집주인 사망 소식과 함께 전세 사기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전세 사기를 당했단 사실을 알게 된 뒤 잠을 못 잔다”라며 “가족들에게 말도 못 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졌다”라고 호소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백채의 빌라를 사들여 전세 사기를 벌인 ‘빌라왕’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가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사기 혐의를 받은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 A(40)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9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명의만 빌려주는 바지 임대인을 통해 무자본 갭투자로 건물을 사들여 임차인 87명으로부터 80억300만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240채를 매입한 뒤 세를 놓다가 제주에서 사망한 빌라왕 등 7명의 배후로 지목됐다. A씨 등은 분양가보다 더 높은 금액의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받은 뒤 이 돈을 건축주에게 지불한 뒤 남은 돈을 리베이트 명목으로 나눠 가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범행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본인을 주범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리베지트 지급을 세입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매매가가 전세가와 같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피해자들이 전세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강민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A씨에게 징역 8년 실형을 선고했다.

A씨와 검찰은 1심 재판 이후 모두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선고를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A씨 측의 논리는 자연적인 임대차계약인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갭투자 구조와 같이 세입자의 위험 발생이 예정된 비정상적이고 인위적인 거래 구조에 대해선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를 포함한 공범들 중 어느 누구도 실거래 가격이 보증금보다 낮다는 점, 매수인이 무자본 갭투자를 한다는 점 등 중요한 사정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법원도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2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에서 ‘전세사기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빌라 기피 부작용 ing

사회 곳곳에서도 빌라 현상이 지속되는 등 ‘빌라왕’ 사건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비아파트의 전세 기피 현상이 지속되며 월세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24일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 1∼3월 서울의 주택 전월세 거래 12만 3669건 가운데 전세 거래는 5만7997건, 월세는 6만5672건으로 나타났다.

전세 비중은 46.9%로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매년 1분기 기준) 가장 작은 수준이다. 3월 계약분 실거래 신고 기한(30일)이 일주일가량 남았지만 전세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의 주택 전세 비중은 2020년 61.6%이었으나 2021년 58.0%, 2022년 50.3%, 2023년 47.6%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분기 서울 지역 빌라와 단독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6만6170건으로 전세는 2만4002건(36.3%), 월세는 4만2168건(63.7%)으로 조사됐다. 전세 비중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5만7499건으로 이 중 전세는 3만3995건(59.1%), 월세는 2만3504건(40.9%)이었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세입자들의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강화된 데다 비아파트의 전세 기피 현상이 지속되면서 주택 임대차 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전세 사기를 피하기 위해 10~20만원 더 내더라도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라며 “월 120만원을 낸다하더라도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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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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