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 차단 정책을 발표했다가 3일 만에 철회했다. 시민단체는 이번 정부의 KC 미인증 직구 금지 철회는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21일 성명을 내고 “해외직구 상품에 대한 다양한 문제는 예전부터 이미 예고됐다. 현재 해외직구를 통한 상품 구매는 이미 연간 6조7000억원을 넘어선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정부는 해외직구 시장의 문제와 소비자들의 불만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하며 수수방관해 오다 뒤늦게 KC 미인증을 이유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국내로 반입돼 문제가 발생한 이후 판매를 금지하거나 중지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국내외를 막론한 상품 구매가 일반화돼 있는 점을 인식하고 탁상공론이 아닌 직접 나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도 이날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 권한대로 국내 제도와 법규를 적극 적용해 플랫폼 사업자와 상품 판매자들에 대해 강력한 제재와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준비와 사전, 사후 규제를 병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법 시행령이나 고시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흡했던 정부 정책 발표를 두고 정책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증하는 해외 직구 시장의 현주소를 모른 채 졸속으로 대책을 내놓아 혼선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국내 기업과 소비자를 적절히 아우르는 균형 있는 정책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해외 직구 통관 문제 등 현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미세하고 세부적인 부분까진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통관 시스템이나 인증 제도 몇가지만 조합해 파악했다면 이런 설익은 정책은 나올 수 없다.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게 중요한데,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요소는 유해물질 검출과 중국산 저가 제품 품질 문제”라며 “결국 KC 인증과 해외직구 품목들을 어떻게 연계시키고 검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또는 사후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책의 수혜자는 소비자도 있고, 플랫폼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도 있다”면서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는데 한국 기업과 소비자에 균형있게 맞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책은 중국 직구 피해를 막는데 집중하다 보니 소비자 선택권이나 편의성을 과도하게 제한한 측면이 있다”면서 “소비자도 염두에 둬야 하고 한국 기업들과의 적절한 스탠스도 유지해야 하는 정책이 고려돼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같은 논란에 정부의 대책은 아직 미완성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안전 인증 관련 담당 부처가 따로 있다는 입장이다. 관련 담당 부서라고 밝힌 국가기술표준원의 김상모 제품안전정책국장도 “통관의 경우 관세청에서 주관하고 있다”면서 “비판은 인지하고 있다. KC 인증에 대한 부처 간 후속 논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해외 직구 상품에 KC 인증을 의무화하는 건 사실상 해외 직구를 차단한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육아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안전성을 핑계로 직구 자체를 막아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다, 인증 통과한 제품들은 물품 값도 뛸텐데 감당은 고스란히 소비자 몫, 정책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국민 동의 없이 법을 보름 만에 시행한다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 등의 비판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과 전기·생활용품 34종, 가습기용 소독·보존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 등 총 80종에 대해 KC 미인증 제품의 직구를 금지하는 내용의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인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를 이용하는 한국 소비자가 늘고 해외 직구도 급증하면서 유해 제품을 걸러낼 필요성이 커지면서다. 그러나 비난이 사그러들지 않자 결국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가 아닌 6월 중 안전성 검사를 실시해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차단한다고 정책을 선회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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