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고 물 새고 곰팡이 자재까지. 하자 없는 아파트가 없다는 최근 신축 아파트는 그야말로 ‘하자 천국’이다. 1군 대형 브랜드 건설사들도 하자가 일상이 된 가운데, ‘민간 아파트’라는 이름하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건축 업계 전문가들은 하자 아파트 페널티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존재하는 행정 처벌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1995년부터 부실한 안전, 시공‧품질 관리를 위해 부실 벌점 제도를 신설했다. 시공 과정에서 품질안전관리 의무 위반사실을 적발할 경우, 인허가청(지자체)이 부실벌점 부과,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에 나설 수 있다.
벌점 부과 시 공공기관 사업입찰에 영향을 미치지만 아파트 등 주택 사업을 제한할 방법은 없다. 또한 벌점 부과나 영업정지 등의 행정 처분은 사실상 중대한 하자일 경우에만 부과된다. 더욱이 ‘건설기술진흥법’ 등 관계 법령에 따른 품질·안전관리 대상도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도시형생활주택 등은 제외돼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실제 무더기 하자에도 벌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달 국토부는 준공 승인을 앞둔 아파트 23곳을 특별점검한 후 1000여건의 하자를 적발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벌점과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대부분 하자가 도배나 창호 등 마감재상의 문제로 중대한 위험을 끼칠 사안이 아니어서 벌점이나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에 나서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부과된 벌점도 시공사의 소송을 거쳐 법원에서 취소되기 일쑤다. 지난 2022년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시공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6명이 사망했음에도 벌점은 ‘0점’ 이다. 당시 광주 서구청은 흙막이 공사에 착수하기 전에 계측기(지표침하계, 건물경사계, 건물균열계)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산에 벌점 2점을 부과했다. 그러나 현산은 ‘부실 벌점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가 현산의 손을 들며 벌점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미약한 벌점제도로 인해 시공사가 하자 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하자가 발생하면 시공사는 감정평가를 거쳐 손해 배상을 해주면 끝”이라며 “벌점제도도 존재하긴 하나 관대해 시공사에서 하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플레이어(시공사)가 페어플레이를 할 수 없는 구조”라며 “공사 현장 작업자는 역량 낮은 외국인, 빨리 공사해야 하는 시공사, 도면을 충분히 그리지 않는 설계자를 촉발하는 구조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영역’ 관리 손 놓은 정부
건설업계의 만연한 하자 뒤에 부실한 제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민간’ 영역이란 이유로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 하자 문제가 아닌 국가 제도 아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만큼 개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파트 하자는 사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어 정치권과 국가에서 개입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우리 일상에서 아파트(주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안전 문제도 있는 만큼 국가와 정치권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 하자 기준에 대해 법원에서 판단해야 할 항목이긴 하지만 입주민 안전을 해치는 것에 대해 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아파트 하자를 막을 ‘사전 예방 방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 의원은 “하자분쟁조정위원회가 법적인 분쟁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인 하자를 막는 역할엔 한계가 있다”라며 “사전적으로 하자를 막을 방안과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사와 시공사에 책임을 강화해 건설 과정에서 안전한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시행사는 건축 후 해산해 하자 발생에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인데 기본적으로 하자 보증금을 담보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다.
장기적으로 선분양제 중심의 분양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의원은 “아파트 하자는 근본적으로 선분양제도로 인한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후분양제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도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선분양제를 시행하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분양 후 입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하자, 설계 변경, 부실사고 등 모든 피해를 소비자가 뒤집어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보고 물품을 살수 있어야 한다”라며 “건설 산업 구조를 바꿔 후분양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사의 처벌을 통해 안일한 업계 대응을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예림 변호사는 “지자체의 관리 감독을 통해 시공사의 하자가 중대한 경우 기준을 만들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페널티가 없다 보니 하자가 발생해도 금전적인 보상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 하자에 대해 안일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토부는 이달 중 주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안에는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아파트는 입주 예정자 사전점검을 진행하지 않고 사전방문 시 발견된 하자를 준공 후 6개월 이내 보수 공사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