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실패의 부작용”…근로체계 유연화 대책 ‘절실’ [생산성 처방③]

“노동개혁 실패의 부작용”…근로체계 유연화 대책 ‘절실’ [생산성 처방③]

- 노동개혁의 시작 ‘주 69시간’부터 표류…부작용 곳곳에 발생
- 노사 법치주의 확립, 생산성 이어지지 못해…추가 대책 필수
- 최저임금 갈등 지속되며 혼란만…임금체계 개편 ‘먼 이야기’

기사승인 2024-07-31 06:00:10
편집자주
한국 산업의 생산성은 마이너스 대 진입 초읽기 중. 경영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비전은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자 고령화와 근로 방식 변화로 흔들리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선결돼야 할 것들을 고민해 봤습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해 11월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강력한 노동개혁을 천명했지만 안팎 갈등에 발이 묶여 동력을 잃은 상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감소 문제까지 심각한 상황에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근로시간 유연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법치주의 확립, 이중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특히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면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데 성공하면 이중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지난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고, 현행 법정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 52시간 근무제’를 최대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가 아닌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넓혀 ‘일이 많을 땐 몰아서 하고, 적을 땐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단순히 근로시간을 늘려 생산성·유연성을 늘리려 한다는 일차원적 사고라는 비판과 함께 ‘주 69시간 근무제로의 퇴행’이라는 역풍에 부딪혀 결국 전면 재검토에 이르렀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환경 관련 정책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대통령의 지시 또는 탁상공론으로만 추진돼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원래 주 68시간 근무제를 기본으로 하다 여야 합의에 따라 2018년부터 52시간 근로를 채택해 왔으며, 이는 긴 시간 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진 일종의 ‘역사’인데 이를 역행한 제도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현실적으로도 이번 주 69시간 근무를 했다고 다음 주 더 적게 일할 수 있는 형태를 가진 직장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노동개혁의 시작 단계였던 근로시간 유연화가 표류하자 나머지 정책들도 속도를 얻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기조로 시행한 노조 회계 투명성 확보 등 제도 도입은 ‘근로소실일수 역대 최저’라는 성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거시적인 근로환경은 여전히 조성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불법행위 등에 대응한 표면적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제도들이 함께 변화하지 못해 근본적 환경은 과거와 똑같다”면서 “단순한 ‘노조탄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법치주의로 발생한 이점이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사 대화 등을 통한 추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발간한 ‘2024 경제전망 시리즈-성장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8개 OECD 회원국 중 33위에 그쳤다. 

이달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10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근로시간 및 근로형태의 유연화를 꾀하지 못한 부작용은 임금체계 개편의 실패로도 이어졌다. 생산성 제고를 위한 주요 조건들이 해결되지 않아 악순환하는 형태다.

이달 12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전체 회의 표결 결과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 1만원대 돌파는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이자 처음이다.

그러나 노사 모두 불만 섞인 반응이다. 노조 측은 “1만원을 넘었다지만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1.7%)”이라며 “최저임금 인상률이 최근 몇 년간의 물가 인상률을 따라가지 못해 실질임금 저하 현상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에선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임금이 2011년 대비 지난해 22.47% 늘어나는 동안 최저임금은 122.69% 상승했으며, 한국의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 60.9%(2022년 6월 말 기준)로, 경제규모 3~4위인 일본(45.6%), 독일(52.6%) 대비로도 크게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최저임금 과속인상으로 인해 파트타임 증가 등 현상이 발생, 정작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할 저임금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경제 발전 정도와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이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계 안팎에선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노사 갈등 및 교섭의 수단으로 변질된 최저임금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재의 제도에선 근로자가 받아야 할 최저선이자 고용주 지불능력의 상한선 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업종이나 지역마다 생산성이 다 달라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임금체계는 점차 선진국화 돼야 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나라 특성 등을 고려하면 임금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돈 뿐만 아니라 여러 요소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그러나 매년 양측에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교섭 형태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이른바 ‘여소야대’, 여야 갈등이 심화된 현재의 정치 상황에선 최저임금위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기업 규제적 관점을 버리지 못하는 야당과, 기업 입장에 서 있는 여당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이 같은 구조 안에서의 노동개혁은 어렵다고 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로 바뀌어가는 흐름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이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려면 선제적으로 문화부터 바꿔 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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