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올라도 보장률 제자리”…잇단 ‘인상 반대’ 목소리

“건강보험료 올라도 보장률 제자리”…잇단 ‘인상 반대’ 목소리

건정심 통해 내년 건보료율 결정…1%대 인상 예상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매달 1890억원 건보 재정 투입
건강보험 보장률 65.7%…OECD 평균보다 10% 낮아
“불필요한 의료 이용 관리하면 건보 재정 확보 가능”

기사승인 2024-08-09 06:05:03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동결됐던 건강보험료가 내년에는 1%대 내외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보장률은 그대로인 채 건보료만 오르면 서민들의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건보료율 인상 대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억제하는 것이 서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건보 재정도 아끼는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달 중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내년 건보료율을 결정할 예정이다. 건정심 안팎에선 내년 건보료율을 1%대 내외로 인상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복지부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 등 국민경제 여건을 고려해 올해 건보료율을 인상하지 않고 동결한 상태다. 건보료율이 동결된 것은 지난 2017년 이후 7년 만이다. 그동안 건보료율은 2019년 6.46%, 2020년 6.67%, 2021년 6.86%, 2022년 6.99%, 2023년 7.09%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현재 건보 재정은 안정적인 상황이다. 최근 3년 연속 건보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누적 적립금만 약 28조원에 달한다. 이는 건보제도 시행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등 의료개혁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매달 1890억원의 건보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투입된 건보 재정은 총 1조1600억원에 달한다. 내년에 의료수가가 오르는 것도 부담이다. 의료수가 1.96% 인상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건보 재정은 1조2708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71%가 의원(3246억원)과 병원(5774억원)에 돌아간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건보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당기수지는 2조6402억원, 2025년 4633억원 흑자를 기록하다가 2026년부터 3072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28년에는 1조5836억원으로 적자 폭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건보료 인상은 국민들에게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7월 성인 10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건강보험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도 건보료율을 ‘인하 또는 동결’해야 한다는 응답은 78.3%에 달했다. 현재 8%인 건보료율 법정 상한을 높이는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55.1%가 ‘부정적’이었다. 건보료는 법에 따라 월급 또는 소득의 8%까지 부과할 수 있게끔 묶여있는데, 지난해 보험료율(7.09%)이 7%대를 돌파하면서 상한에 가까워졌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앞으로 환자와 보호자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는 의료개혁을 위해 건보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7월1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대 정원 증원 파급 효과를 떠나 의료 체계의 정상화를 위해 일정 부분 건보 지출의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보 적립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건보료율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며 “국민 부담 완화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번 달에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건보료율만 인상하면 그 부담은 서민들이 짊어지게 되고 대형 병원과 의사들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 보장률을 함께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건보 보장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가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고 보험료율을 인상할 거면 보장률도 함께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환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 중에서 보험으로 보장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진료비 총액이 100만원 나왔고 보장률이 70%라면 환자 본인은 30만원, 건보공단은 7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보장률이 높을수록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적어진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건보 보장률은 6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6.3%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가계 진료비 직접 부담 비중은 27.8%로 OECD 평균인 18.1%를 상회한다.

정 정책위원장은 “건보 보장률을 올려서 의료 서비스 비용의 상당 부분을 커버해 줘야 실손의료보험 활용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면서 “건보 재정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매년 임기응변식으로 건보료율을 올리는 방식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은혜 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역시 “의정 갈등 사태로 인해 병원 이용이 줄면서 올해 건보 재정수지도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상황인데 건보료율을 올리면 의사들한테 돈을 더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며 건보료율 인상을 반대했다.

그러면서 건보료율 인상 없이도 국민들의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건보 재정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매년 건보료를 내도 피부로 느끼는 보험 혜택은 적고, 대학병원에 가도 의사는 아주 짧게 만날 뿐인데 건보료율까지 인상되면 국민적 반감이 클 것”이라며 “별도 재정 확충이 없어도 의료쇼핑 문제를 관리하면 현 건보 재정으로 커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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