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 아닌 ‘자아실현 공간’ 돼야” [저출생, 기업의 시간④]

“기업, 생존 아닌 ‘자아실현 공간’ 돼야” [저출생, 기업의 시간④]

최영준 연세대 교수 인터뷰 

기사승인 2024-08-26 06:05:04
편집자주 
한국 ‘소멸론’까지 불러온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위기 극복에 선발주자로 나선 정부의 노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이제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나서야 하는 이유와 역할을 중심으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가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최근 국내 모 건설회사가 출산한 임직원에게 자녀당 1억원을 쾌척해 귀감이 되고 있다. 출산과 보육으로 인한 재정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현실적인 지원이지만 보편적인 혜택이 되진 못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도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근로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복지국가연구센터장)를 최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기업 역할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근로시간의 유연화, 열심히 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역할은 무엇인가

기업이 역할을 해주면 가장 좋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출산과 보육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지원하는 주체는 세 가지로 국가, 가족, 기업이다. 국가는, 모두가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많은 걸 했다. 예를 들어 0세부터 5세까지 무상보육 시스템을 만든 국가는 거의 없다. 유럽도 시스템을 보고 놀란다. 질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지만 시설도 매우 많고 ‘아이 돌봄 서비스’라고 급한 일이 있으면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라면 부모님이나 이웃으로부터 하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게 두 번째 가족이고, 국내에서 부족한 부분은 역시 세 번째 ‘기업’이다. 유럽에서 왜 출산과 보육만 잘하면 되느냐면 근로시간이 짧다. 예를 들어 독일과 한국은 1년 근로시간이 거의 600~700시간 차이난다. 한국이 일을 너무 오래하는 것이다. 또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통근 시간이 가장 긴 국가로도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육아와 근로 병행이 안 된다. 

결국 기업은 돌봄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게 중요하다. 시간 문제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 일감을 조금만 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하고 늦게 출근하면 늦게 퇴근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유연근무다. 우리는 아이를 돌보려면 육아 휴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국가에선 육아휴직을 쓰지 않거나 휴직기간이 짧다.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무시간엔 열심히 일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저녁에 일하는 문화를 없애는 게 너무 중요하다. 

출산지원금은 좋은 시도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기업은 가능할지 몰라도 모든 기업이 따라 할 대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소기업 근무자가 80% 이상인 국가에선 쉽지 않고,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기업과 국가가 이런 부분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라져야 할 조직 문화가 있을까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이건 국가가 할 수 없다. 지금 세대는 탈권위적 가족문화 속에서 자랐다. 부모와의 관계가 굉장히 수평적이고 오히려 부모보다 위에 있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문화 속에 자라온 아이들이 직장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군대 문화를 경험했을 때 느끼는 이질감은 크다. 나 혼자 생존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갖는다고 건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공간이 생존의 공간을 넘어서 미래 공간, 그러니까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 기업이 동기를 주고, 하는 일이 의미 있음을 알려주고, 제안을 하면 수용되면서 조직이 나아지고, 성과가 날 때 삶의 의미가 생기고, 그러면서 연애도 하고, 자녀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저출산 대응 정책이 될 수 있고, 그게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인구 감소 사회에서 생산성은 중요하다. 과거처럼 다그치기만 해서 생산성이 오르는 게 아니다. 창의적인 사회에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게 기업 역할이다.

좋은 제안이지만 이상적일 수 있다

맞다.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집해 온 패턴을 바꾸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이 패턴을 바꾸지 않은 채 왜 문제가 안 풀리는지만 고민한다. (최 교수는 앞서 청년 세대가 왜 ‘출산 파업’을 하는지, 어째서 아이를 낳을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점을 바꿔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출생 문제를 복잡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 세 가지인 것 같은데 인구가 늘지 않는다는 게 문제고, 왜 젊은 세대가 출산파업을 하는 걸까, 그리고 너무 오랜 기간 저출생이 유지돼 오면서 향후 20~30년 동안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인구감소 사회가 올 텐데 우리는 인구감소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다 있다 보니 복잡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저출생 대응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는 

육아휴직 급여를 올린다고 했는데 좋은 정책 같다. 육아휴직 급여와 임금격차가 크면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된다. 육아휴직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 대상자여야 한다. 그런데 고용보험 대상자 중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는 빠져 있다. 이러면 점점 소수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최영준 교수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바스대학교 사회정책학과 박사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연구소장 △Social Policy and Society, Social Policy Administration 국제자문위원 △한국정책학회, 한국사회복지학회, 연구위원장 △Lab2050 이사, 푸르메재단 이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학과장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송금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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