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조한필의 視線]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기사승인 2024-08-12 10:48: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갈등 조사 내용 그래픽.

지난 4일 내놓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보고서 내용이 놀랍다. 국민 92.3%가 여러 갈등 사안 중 “진보-보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했다. 또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결혼도 할 수 없을 것(58.2%)”이고, “친구·지인이라도 술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33.0%)”고 답했다.

 이렇게 돼버린 한국사회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런 상황의 일정 부분은 한국 정치권이 불러왔다. 정치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진보-보수 갈등을 조장하는 언행을 멈춰야 한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를 놓고 진보-보수 진영이 맹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이어 올해 초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됐다. 물론 진보계열이 먼저 소련공산당 이력의 홍범도 흉상을 육사 교정에 세우고, 영화 ‘백년전쟁’을 상영해 보수계열이 반격에 나서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명색이 한국사 박사학위자로서 나름대로 객관적 시각을 갖춰야겠다는 기우를 했다. 홍범도와 이승만 관련 논문들을 힘들게 찾아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듯 진보-보수 주장이 난무하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나도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나?” 꼭 필요치 않은 고민을 하게 한다. 

 2019년 여름이었다. 이영훈 교수 등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냈을 때다. 고교 동기 몇 명이 탄 자동차 안에서 한 친구가 이 책을 몇 권 샀다며 나눠줬다. 당시 조국 전 민정수석은 “구역질나는 책”이라고 맹비난했다. 한 번 읽어 볼까 생각은 했지만, 돈 주고 사고 싶지는 않은 터라 ‘고맙게’ 받았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런 책은 갖고 싶지 않다”며 ‘수령거부’를 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젠 친구사이는 종교뿐 아니라 현대사 얘기도 금물이다. 며칠 후 있을 친구 모임서는 지금의 신임 독립기념관장 사태, KBS의 이승만 다큐 방영 논란이 거론되지 말아야 할 텐데. 

 남들이 나를 보수로 여길까 진보로 여길까. 가끔 생각해본다. 잘 모르겠다. 민주당 충남도지사 시절에 도 산하기관장(충남역사문화연구원)을 지냈으니 진보계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2019년 쓴 논문 ‘유관순 발굴 과정의 검토’를 보면 보수로 여길 구석도 있다. 이 논문은 “유관순 선양작업이 친일-우익-기독교 계열의 합작품으로 그들의 과오 덮기 차원에서 추진됐다”는 진보계 학자들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1947년 한반도는 분단 위기였고 남한은 좌우익 갈등이 극심했다. 독립지사 등 국민은 3.1정신을 통한 민족통합을 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 열사 선양이 이뤄졌음을 명확한 논거를 통해 밝혔다. 지난달 뉴욕의 한 학술단체는 이 논문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투고 요청 이메일을 보내왔다.

최근 뉴욕의 한 학술단체가 필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2019년 발표한 논문 '유관순 발굴 과정의 검토'를 거론하며 투고 요청을 했다.   사진=조한필 기자

 지난 2월 ‘건국전쟁’을 보고 이 대통령과 관련된 몇 가지 의문점을 지적했다. 3.1운동 촉발에 영향을 줬다, 3.15 부정선거에 연관성이 적다는 부분 등이다.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나를 보수, 진보로 예단하지 않게 하려고 문맥 구성에 신경 썼다. 

 대학시절 이념적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당시 사회학 명제인 ‘사상(思想)의 존재 구속성’을 신뢰했다. 개인의 사상은 시대·가족·교육 등 환경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명제에 대항하며 살고 싶었다. “외부 영향을 거부하며 내 생각대로 살리라.” 생각이 똑같을 수 없는 특정 진영에 속해 휩쓸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요즘 정국은 국민을 진보-보수로 양분하려 드는 것 같다. 해방직후 좌우갈등 속에서 “3.1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왜 나왔는지 알 듯하다. 만약 진보-보수 한 진영에 서서 뭔가 외치려면 자신이 확고한 지식의 토대 위에, 신념은 갖고 말하는지 돌아보자.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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