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블랙홀’ 서울 대형병원…지방 중소병원 ‘휘청’

‘전문의 블랙홀’ 서울 대형병원…지방 중소병원 ‘휘청’

올 상반기 국립대병원 교수 223명 사직…작년 79.6% 수준
서울대병원 등 ‘빅6 병원’ 교수 채용 본격화
세브란스병원, 퇴임 교수 재고용…“인건비 조정”
“의료진 지쳐가…이직 고민하는 동료 의사도”

기사승인 2024-08-13 06:00:09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전국 대학병원에서 사직하는 교수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서울 대형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을 준비하면서 지방 중소병원들의 인력난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지방 사직 전문의들이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필수의료과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18일 기준 올해 상반기에 전국 국립대병원 교수 4065명 중 223명이 사직했다. 이는 2023년도 전체 사직 교수의 79.6% 수준이다. 진료과별 사직률은 흉부외과 62.6%, 산부인과 61.2%, 소아청소년과 59.7% 순으로 나타났다.

교수 사직에 이어 전공의 집단 이탈, 정부의 전문의 중심병원 추진 등에 따라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전문의 채용에 나서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5일부터 진료교수 공개채용 절차에 들어갔다. 심장혈관흉부외과(소아심장), 신경외과(소아신경), 안과(소아신경), 이비인후과(이과학),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 응급의학과(응급중환자의학), 소아청소년과(신생아) 교수 1명씩을 모집한다.

서울대병원은 펠로우(임상강사)도 채용한다. 산부인과 4명, 소아청소년과 1명, 마취통증의학과 4명, 진단검사의학과 3명, 응급의학과 4명 등을 선발한다. 근무기간은 9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로, 내년 3월 전공의 복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9일부터 내과 계열 당직 전담 촉탁의 모집을 시작했다. 25일까지 마취통증의학과 임상교수 초빙에도 나선다. 다음달 1일까지는 위장관외과 입원전담전문의를 모집한다.

고려대안암병원은 7월28일까지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혈액종양내과, 유방내분비외과, 중환자외상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 채용을 진행한다.

가천대길병원은 오는 19일까지 신경과(호스피탈리스트), 심장내과(부정맥), 정신건강의학과(소아), 직업환경의학과(보건관리), 병리과 임상교수를 선발한다. 이대서울병원은 내과 응급실 전담전문의를 초빙하기로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료공백 사태가 7개월째로 접어들며 교수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어 사직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 거점 대학병원들은 존폐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의료 붕괴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교수들은 사직을 선택하고 있고, 연구 활동도 급격히 줄고 있다”고 전했다.

정년퇴임한 교수를 고용하는 방식으로 인력난을 일부 메워왔던 중소병원들은 이마저도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은 퇴임 교수를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전공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 허동수 연세대 비상정책이사회 이사장은 최근 열린 회의에서 “전공의 부재로 생긴 인력 공백 해결을 위해 인건비를 조정하더라도 유능한 퇴임 교수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지방 병원 교수들의 이탈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다. 강원대·충북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7월25일 기준 충북대병원 교수 10명이 사직했고, 강원대병원 교수 23명이 사직했거나 사직할 예정이다. 서울 대형병원들이 교수 선발을 확대하면 지역 병원 의료진 공동화 현상은 심화될 수 있다.

대전의 한 종합병원 A전문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인력 충원은 없는 상태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리면서 높아진 환자 중증도에 대처하느라 의료진이 지쳐가고 있다”라며 “지역 내 인력 이탈은 늘고, 내년 신규 전문의 채용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진퇴양난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 환자도, 의사도 마찬가지다”라며 “실제 주변에서 이직을 고민하는 동료 의사가 몇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통해 지역 책임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다. 의료전달체계에서 허리 역할을 맡아야 할 중소병원들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천의 한 종합병원 B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으로 중소병원들도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문제는 경증으로 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병원비를 더 내게 하는 것으로 뿌리 깊게 박힌 잘못된 진료패턴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전공의의 빈자리를 전담간호사(PA간호사) 등 보조 인력으로 채우고, 전달체계나 병원 구조 변화는 다시 미뤄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지방 의료 인력 이탈에 따른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 우려에 대해 과도한 걱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경실 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지난달 31일 의료개혁 추진 상황 관련 출입기자단 설명회에서 “일부 중증 환자를 진료하려면 전문의를 추가 채용해야 될 순 있지만 과도한 인력 쏠림이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며 “비수도권 의료 인력을 수도권 병원이 빨아들일 것이라는 과도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제도를 조정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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