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다 싫다”는 요즘 한·일·중 청년들…저출산 정책 효과 보려면 

“결혼·출산 다 싫다”는 요즘 한·일·중 청년들…저출산 정책 효과 보려면 

기사승인 2024-09-03 20:13:43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지는 2030대들이 줄어들면서다. 맞벌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여성 경제 참여율도 높아지고 있다. 

반면 청년들의 변화하는 인식과 다르게 저출산 정책은 그대로다. 수년째 비용을 지원하는 현금성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어,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변화하는 청년들의 인식에 맞춰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은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제1차 한·일·중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동아시아 3국 2030대 사회 인식에 기반한 저출산 정책의 시사점 모색’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은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2030 청년세대의 사회 인식을 들여다보고, 저출산 정책의 시사점을 찾기 위해 열렸다.

최근 저출산 추세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한국 0.72명, 일본 1.2명, 중국 1.0명에 불과하다.

저출산 현상 심화로 세계 2위 인구 대국인 중국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도우 양 중국사회과학원 인구 및 노동경제연구소장은 “중국 인구는 2021년 정점을 찍고 이후 마이너스 시대로 돌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저출산 현상 심화로 총 인구가 2030년 13억9100만명, 2040년 13억4200만명, 2050년 12억7100만명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이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제1차 한·일·중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사진=김은빈 기자

각국의 전문가들은 저출산 현상의 원인으로 청년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인식은 줄고, 맞벌이를 선호하는 경향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다.

모리이즈미 리에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에서는 결혼·출산·육아에 대한 지지가 급속히 줄었고, 비혼, 무(無)자녀, 이혼, 워킹맘 등 기존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온 생활방식도 허용되고 있다”며 “20·30대 젊은 세대는 아이를 가지려는 동기가 약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8∼34세 미혼 중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남녀 비중은 2015년 각각 12.0%, 8.0%에서 2021년 17.3%, 14.6%로 크게 올랐다. 이 세대의 희망 자녀 수도 2015년 남녀 각각 1.91명, 2.02명이었는데 2021년 1.79명, 1.82명으로 줄었다. 

특히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도 변화했다. ‘결혼해서 아이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전통적 출산 관념은 2015년 48.7%에서 2021년엔 33.8%로 급감했다. 반면 ‘아이가 있으면 생활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라는 응답은 78.4%에서 80.0%로 늘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어서’라는 답도 37.7%에서 40.9%로 증가했다.

일·가정 양립을 지향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일본 여성 중 결혼하고 나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경력을 이어간 비율은 1985~1989년 60.3%에서 2015~2019년 85.1%로 올랐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뒤 취업 상태를 지속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39.0%에서 69.5%로 증가했다. 

‘미혼 남녀가 결혼 상대에게 바라는 조건’도 맞벌이를 원하는 경향에 따라 바뀌었다. 일본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바라는 조건 중 ’경제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응답은 2015년 42%에서 2021년 48.2%로 늘었다. 일본 여성이 상대 남성에게 바라는 조건으로는 ‘가사 및 육아능력’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2015년 57.7%에서 70.2%로 증가했다. 

한국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가족 가치관, 특히 젠더 문제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인식 변화가 굉장히 빠르다”며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일본을 따라간다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상림 연구원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 또는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한국의 미혼 남성의 비율은 1998년 75.5%에서 2022년 39.8%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여성은 52.1%에서 23.5%로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인식 변화에 맞춰 저출산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연구원은 “정책은 여전히 정부의 복지 서비스 지원 사업 위주로 구성됐다”며 “서비스, 현금 지원 중심의 사업들만 나열하고 저출산을 비용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은 다층적 경험과 사회구조가 쌓여 만들어진 문제로 청년의 인식과 경험, 미래 기대를 다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이거 필요하면, 이거 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청년들이 어떤 것을 위기로 느끼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원하는 경향에 맞춰 관련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쉬운 맞벌이·공동육아 사회 구축의 방향성은 젊은 세대의 의식과도 맞아 떨어져 향후 추진이 필요하다”며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젠더 의식이나 결혼, 출산에 대한 사회 규범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책 전달 방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저출산 대책은 마치 ‘결혼과 출산이 힘든 일이니까 국가가 지원해줄게’라는 뉘앙스로 다가온다. 오히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 수 있다”며 “결혼 여부, 세대에 상관없이 저출산 대책이 지지를 받으려면 메시지 전달 방식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한 공공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결혼·출산·육아에 드는 비용 증가 등 영향으로 초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국가가 비용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초혼 연령은 1980년 23.59세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0년 24.89세를 기록했고, 2020년에는 28.67세로 급증했다.

도우 양 연구소장은 “출산, 양육, 교육의 높은 비용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주요 요인”이라며 “중국은 현재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한 공공 지출 수준이 아직까지 제한적이다. 중상위 소득 국가이지만 공공 지출을 늘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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