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자녀’ 낙인…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위기의 수용자 자녀➂]

‘범죄자 자녀’ 낙인…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위기의 수용자 자녀➂]

-수용자 자녀 지원하는 독자적 법령 부재
-전문가들 “국민적 인식 부족과 사회적 편견이 원인”
-수용자 자녀 64%, 부정적 인식 느껴
-수용자 자녀, 개별적 인간으로 바라봐야

기사승인 2024-09-15 16:00:03
쿠키뉴스는 기성 언론의 책임과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언론인 활동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예비 언론인들에게 콘텐츠 구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지난 1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콘텐츠 기획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기사는 공모전에서 당선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대학언론인이 쿠키뉴스의 멘토링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수용자 자녀는 잊힌 피해자로 불린다. 부모가 수용된 후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수용자 자녀는 ‘범죄자 자녀’라는 편견 속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수용자 자녀를 보호하라는 권고 등을 내렸다. 권고는 2017년 우리 정부가 제출한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 견해이다. 권고 이행 확인을 앞둔 현시점에서도 수용자 자녀는 여전히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자녀들을 지원하는 별도의 법도 없는 상태다. 우리 사회가 수용자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해야 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현재 한국에선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별도의 법이 없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현재 한국에선 수용자 자녀를 정의하고 지원하는 독자적인 근거 법령이 없다. 수용자 자녀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등 개별법에서 규정하는 요건에 부합할 때 지원 대상이 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의 부재는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한다고 강조한다.

수용자 자녀 보호 위한 노력에도 ‘법’은 아직 부재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수용자 자녀를 보호하고 지원하려는 크고 작은 움직임을 보여왔다. 지난 2019년 심의·의결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 사례다. 개정안은 수용자 자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각 소장은 신입 수용자에게 미성년 자녀에 대해 보호조치를 의뢰할 수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수용자가 미성년 자녀와 접견하는 경우 접촉 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단 내용도 포함했다.

같은 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청, 대법원, 법무부에 수용자 자녀 인권 보호를 위한 개선 방안을 권고했다. 권고에 따라 경찰청은 체포·구속 과정에서 자녀를 보호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양형조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법무부는 전국 교도소에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별도의 법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지난 2020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용자 자녀 보호3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한정애 의원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수용자 자녀 보호법 폐기


지난 2020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용자 자녀 보호3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수용자 자녀 보호 지원 강화 △수용자 자녀 지원 및 인권 보호 기본계획 수립 △협의체 운영 △임산부 수용자 처우 개선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한 의원은 “수용자 자녀는 부모와 분리되는 즉시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재한 상황”이라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본 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제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그 이유로 한 의원은 법무부와 법제사법위원회의 부족한 관심과 의지를 짚었다. 한 의원은 “법무부 형사법제과 등에 협조를 요청하며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으나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촘촘한 약자 복지 구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인, 아동, 청소년, 장애인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현 정부의 복지 퇴행 정책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한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법안을 재차 발의할 계획이다.

국민적 인식 부족과 편견이 법 제정 막아

전문가들은 관련 법이 제정되지 못한 이유로 ‘수용자 자녀에 대한 국민적 인식 부족’을 지적했다. 이일형 교정복지 전문기관 세진회 사무국장은 피해자 자녀와 가해자 자녀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피해자 자녀를 도와야지, 왜 가해자 자녀를 돕냐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며 “수용자 자녀 문제가 정책 의제로 설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적 인식 부족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정서적 연좌제에서 비롯된다. 정서적 연좌제는 수용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 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현상이다.

본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용자 자녀의 64%(18명)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느꼈다. 그래픽=장예지

쿠키뉴스는 지난 5월9일부터 27일까지 아동복지실천회 세움과 세진회에 의뢰해 수용자 자녀 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64%(18명)의 수용자 자녀가 정서적 연좌제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같은 비율의 수용자 자녀는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수용자 자녀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부모가 수용된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본지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회적 편견으로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알리지 못한 자녀는 71%(20명)였다. 

부모가 수용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수용자 자녀는 왕따(따돌림)를 당하기도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한 수용자 자녀는 아버지가 체포되는 것을 목격했다. 충격을 받은 자녀는 친한 친구에게나마 아버지의 수용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나 학교 전체에 이 사실이 퍼지며 자녀는 왕따가 됐다.

최경옥 더채움 복지연구소 대표(前 세움연구소 부소장)는 한국의 가족 중심적 사회가 수용자 자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는 자녀를 가족의 종속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주의는 ‘콩 심은 데 콩 난다.’, ‘그 부모에 그 자식’ 같이 개별 구성원을 가족으로 철저히 집단화한다.

이일형 교정복지 전문기관 세진회 사무국장. 사진=장예지

범죄자 자녀 아닌, 개별적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


수용자 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선 자녀들을 그 존재로서 인정해야 한다. 어느 집안의 자녀라는 관점이 아닌 개별적인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한 의원은 “우리 사회는 수용자 자녀를 범죄자와 겹쳐서 보지 말고 보호자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용자 자녀가 아동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용자 자녀가 스스로 위축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끼리 교류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사무국장은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선 부모의 수용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며 “비슷한 아픔을 겪은 아이들이 서로 위로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진회에선 수용자 자녀들이 만나 아픔을 공유하는 수용자 자녀 캠프를 진행한다. 이 사무국장은 “수용자 자녀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가 생기고 그 안에서 성장을 지원하는 멘토가 생긴다면 아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장예지 기자
45yeji@daum.net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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