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모와 따로 사는 만 30세 미만의 청년 상당수가 세대분리 기준에 가로막혀 독립가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LH임대주택, 청년전세대출 등 각종 지원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쿠키뉴스 취재팀이 지난 8월21일부터 11월1일까지 약 2개월간 청년·주거복지 단체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거나 직접 수소문해 취재한 결과, ‘만 30세’ 세대분리 연령 기준에 못 미쳐 서류상 개별가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20대 청년들이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정복지센터에서 ‘30세 미만은 세대분리가 안 된다’며 수급 신청을 거절 당한 경우도 있다. 최영훈(가명·33·남)씨도 그 중 하나다. 최씨는 “만 29세까진 부모에게 부양받아야 하고 만 30세부턴 독립할 수 있다니,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년 복지 상담사들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김세현 광진구 청년센터 선임매니저는 “복지 지원을 원하는 청년들 중 세대분리법에 막혀 지원이 불가능한 사례가 꽤 있다”며 “부모 지원은 일절 받지 않고 있는데, 법이 부모 소득을 전제로 돕지 않는 셈이라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세대분리를 담당하는 행정복지센터 측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만 30세가 세대분리의 기준이 된 건 현행 소득세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법 시행령 제152조의3(1세대의 범위)에 따르면, 거주자의 나이가 30세 이상인 경우만 개별가구로 인정하고 있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시행령 제2조 제2호 나목에는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여도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이라면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0년 ‘30세 미만’ 연령 기준이 부적절하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30세까진 부모와 생계를 함께하고, 30세가 넘으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20대 청년과 30대 청년 모두 민법상 성인이고, 부모의 친권에서 벗어나 있다. 부모가 20대 자녀를 부양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반화해 20대 자녀가 미성년일 때와 똑같이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생계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지만 법은 바뀌지 않았다.
20대 청년들이 개별가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①결혼했거나 ②일정 소득(올해 기준 89만1378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진입 시기가 늦어지며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청년들이 줄고 있다.
20대란 이유로 ‘세대분리’에 실패한 청년들은 복지 정책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한국은 ‘가구단위 복지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독립가구를 구성하지 못하면 청년전세대출, 국민취업지원제도, LH임대주택 등 지원을 받기 어렵다. 생계·주거·의료·교육 급여를 지원하는 기초법 역시 가구의 소득, 재산을 고려해 수급자를 선정하는 구조다. 국민의 최소한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기초법이 위기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 일부 청년들은 세대분리법에 가로막혀 더욱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류상 부모 소득과 묶여 있어 각종 청년 지원 정책에서 번번이 탈락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버티다 3년 전 집을 나온 권미희(가명·23·여)씨는 “구청에 수급 신청을 했지만, 세대분리가 되지 않아 부모 소득 때문에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대분리법이 자립하지 못하도록 막는 느낌”이라며 “코로나19 유행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살길이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30세 미만’ 연령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굉장히 이상한 법이다. 가난하더라도 ‘20대 청년이라면, 국가가 돕지 않는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며 “반드시 지원이 필요한 청년들을 되레 복지 사각지대로 내모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폭력, 가정해체 등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청년들에게 현행법이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청년들의 자립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청년도 자립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김지선 주거복지센터 활동가는 “20대들이 독립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걸 우리 사회가 응원한다면, 필요할 때 공공부조 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현행법은 청년이 스스로를 부양하는 독립적인 ‘성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 이는 고립된 의존에서 ‘연결된 독립’으로 나아가도록 돕겠다는 청년 정책 목표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