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들의 세대분리를 막는 ‘만 30세 미만’ 연령 기준이 명확한 근거 없이 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20대라면 부모 부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반화해,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5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만 30세’라는 세대분리 가능 연령 기준은 ‘부모 지원’을 전제한 제도임이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본지에 “20대 상당수는 부모와 생계를 같이 하고, 30대 이후엔 실질적으로 취업이나 주거 분리를 한다는 측면에서 30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현재 부모가 20대 청년들을 지원하는 경향이 없어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복수 전문가 사이에선 세대분리법의 ‘만 30세 미만’이라는 연령 기준의 근거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30세라는 연령 기준 자체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30세면 성년이 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부모와 가구를 분리해 수급할 수 있는지를 정할 때 ‘30세’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이후에 한국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지만, 제도는 달라지지 않은 결과다. 비혼·청년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부양 의식이 변화하며 20대부터 가족과 주거를 분리하거나, 독립하지 않는 30대가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더 이상 기존 가족 모델이 포섭하지 못하는 가구 형태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세대분리법은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녀의 세대분리를 막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이 기초법 제정 당시 참고한 일본에는 부모와 따로 거주하는 자녀를 동일 가구로 묶는 법적 규정이 없다. 일본의 ‘생활보호법’은 ‘동일한 주거에 거주하면서 생계를 같이하고 있는 자’를 같은 세대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성인 자녀를 별도 가구로 인정한다. 스웨덴은 함께 거주하더라도 18세 이상은 별도 가구로 고려되며, 독일은 16~17세 청소년도 별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인권위도, 복지 전문가도 ‘고치자’는데…“계획 없다”는 복지부
현행 세대분리법이 ‘연령에 의한 차별’이라는 지적은 과거에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0년 복지부에 “30세 미만 미혼 자녀를 원칙적으로 부모와 ‘개별가구’로 인정하라”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연령을 기준으로 20대 청년을 복지 정책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권고 배경에는 사회 변화에 맞춰 법이 손질돼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인권위 사회인권과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30세 미만’ 기준은 당시 사회 통념에 따라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법이 제정된 1999년에는 30대 미만 미혼 자녀가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경향이 강했다. 20대 청년은 결혼하거나 일정 소득을 벌어야만 독립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러나 최근 비혼·청년 1인 가구 증가 등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고 있지만,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20대 청년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부모와 따로 사는 개별가구가 30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세대분리를 못 하는 건 권리 보장 측면에서 빈틈이라고 판단했다”고 피력했다.
복지부는 2021년 인권위 권고에 대해 “20대 청년 전체를 부모와 별도 가구로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회신했다. △부모 지원이 충분한 청년까지 수급하게 될 가능성 △심각한 재정 소요 수반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별도 가구 보장 범위를 확대하거나 2021년부터 시행되는 ‘청년 주거급여 분리지급 모델’을 생계급여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일부 수용 입장을 전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복지부는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 인권위 관계자는 “복지부에 지난달 21일 제도 개선 현황을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별도 가구 보장 범위 확대나 분리지급 모델에 대한 생계급여 도입 등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본지에 “부모 부양을 받는 20대 전체의 수급권을 보장하면 재정적 측면에서 사회적 수용성이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20대 청년은 개별가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청년내일저축계좌, 근로·사업소득 추가공제 대상 연령 기준 완화 등을 언급했다.
결국 20대는 민법에 따라 성인의 의무를 부여받지만, 복지 정책 대상에선 제외되는 유일한 연령대로 남아있다. 20대와 30대는 민법상 성인이면서 부모의 친권에서 벗어나 같은 법의 의무를 부여받고 있지만, 세대분리에서만큼은 20대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 부양을 받는 30대도 존재하지만, 정부는 이들이 개별가구로서 보장받는 원칙에 대해선 문제시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세대분리 가능 연령이 ‘만 30세’로 정해진 명확한 근거가 없는 만큼, 사회 변화에 발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빈곤을 겪는 20대가 ‘만 30세’ 연령 기준에 가로막혀 복지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자체가 취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일률적으로 (연령을 기준으로) 정하다 보면 오히려 취약한 사람들이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며 “상당히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해외 주요 국가들은 한국처럼 연령 기준을 두지 않는다. 수급 가구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제도”라며 “이는 청년 세대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했다. 허민숙 국회사무처 입법조사관도 “정부가 사회 변화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최소한으로 일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제도”라고 질타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매우 전근대적인 기준”이라며 “20대라도 독립해서 산다면 개별 가구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