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내년도 서민정책금융 예산을 올해보다 6100억원 줄였다. 금융권에서는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해 충분한 서민정책금융 공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 서민금융공급 예산은 1조200억원으로 올해보다 약 6100억원 줄었다. 금융위가 예산 확대를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삭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부족 재원을 민간 금융사를 통해 끌어온다는 계획이다. 은행권의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공통출연요율 변경(0.035%→0.06%)을 통해 986억원의 서민금융 재원을 추가 확보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예산은 일부 줄어든 부분이 있지만 공급 목표 총액은 (올해와) 거의 비슷한 걸로 알고 있다”며 “다른 재원을 합치면 올해 수준으로 공급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민금융 예산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내년도 서민금융 ‘공급’은 줄어들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 추산에 따르면 최저신용자특례보증 예산을 지난해와 같은 560억원으로 유지하면 공급 목표가 올해 2800억원에서 내년 1700억원으로 1100억원 줄어들게 된다. 대출받은 신용자가 원금 상환에 실패했을 때 서금원이 은행에 대신 갚아준 금액의 비율인 대위변제율이 올해보다 13%p 높아졌기 때문이다.
햇살론15도 주요 재원인 국민행복기금이 고갈되면서 공급 축소가 예상된다. 예산을 전년과 동일한 900억원으로 유지할 경우 전체 공급 목표가 내년에는 6500억원으로 4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건수로 보면 최저신용자특례보증의 경우 총 4만4000건이, 햇살론15는 4만8192건의 공급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나마 국회에서 이같은 정부의 예산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회 정무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5일 회의에서 서민정책금융을 증액했다. 대표적인 서민정책금융인 ‘햇살론15’는 애초 편성한 900억원에서 55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최저신용자특례보증’도 정부가 제출한 560억원보다 370억원을 더 늘리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서민금융 예산 삭감이 불법사금융 근절 정책과 모순된 행보라고 지적한다. 금융취약계층에게 공급되는 서민금융이 축소될 경우, 취약계층이 불법사금융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은행 함께만드는세상 안준상 상임이사는 “경제가 어려워지며 저신용 서민들의 자금 공급도 줄어가는 상황에서 정책금융 예산을 줄이는 것은 이들을 불법사금융으로 내모는 것 밖에 안된다”며 “불법사금융 업체들을 아무리 단속하고 잡아도 수요가 존재하면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미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상담은 7303건으로 상반기 기준 최고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미등록 대부 3431건 △채권 추심 1224건 △고금리 1032건 등이다.
무이자 소액대출을 지원하는 더불어사는사람들 이창호 대표는 “정부지원 대출을 줄이는 것도 문제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 저신용 서민들의 급전 창구가 없다는 점”이라며 “소액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가 최근 2030 청년세대들에게도 확대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지원을 통해 급한 자금을 공급하는 ‘임시 대책’과 민간 금융을 통한 자금을 공급하는 ‘본질 대책’ 두 가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