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불안한 진료과들…“수술만 하고 환자 떠넘길지도”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불안한 진료과들…“수술만 하고 환자 떠넘길지도”

기사승인 2024-12-03 06:00:10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따라 병원 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진료과가 생기고 일부 의료진과 환자군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형병원을 중증·응급 질환 중심으로 재편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병원이 전체의 90%에 달하는 가운데 일반 병상 축소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조전환 사업에 참여하는 병원들은 중환자실, 특수병상, 소아·응급·고위험분만 등 유지·강화가 필요한 병상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병상을 현재보다 5~15% 감축해야 한다. 중증·응급환자 진료 비중은 현행 50%에서 70%까지 늘린다.

의료계에선 사업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일부 진료과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설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진료과가 가정의학과다.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진료를 표방하고 있는 가정의학과는 비만부터 검진, 통증, 미용 등 다양한 분야의 소아 환자부터 성인, 노인까지 두루 진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가 중점적으로 밀고 있는 중증·응급 분야와는 거리가 있다. 전공의 사이에서 인기도도 떨어진다. 가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8년 105.6%였지만 2019년 88.9%, 2020년 80.1%, 2021년 60.8%, 2022년 68.3%, 2023년 56.0%로 하락세를 걸었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질환 위주 진료에 집중하면서 비만·금연클리닉, 만성질환 관리, 예방 접종, 골다공증 등 노인성 질환 치료에 치중해 있는 가정의학과는 다른 진료과와 비교되며 병원 내부에서 상대적 차별을 겪는다.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 가정의학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비만 치료가 돈을 잘 번다고 하는데 주사 값이 비싼 거지 의사 상담료는 들어가는 시간 대비 남는 게 없다. 금연 상담도 마찬가지다”라며 “병원에서 매출 압박을 받고 다른 진료과에서 하기 싫은 일을 떠안는 곳이 바로 가정의학과다”라고 말했다.

외래 진료는 줄이고 다른 과에서 들어오는 판독이나 돈이 되는 건강검진 일을 하라는 압력이 이어지기도 한다. A교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뽑아서 검진센터에 투입하는 게 병원 입장에선 남는 장사다”라며 “구조전환 사업이 자리 잡아서 병원이 안정화되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외래 진료 대신 검진 일만 하게 될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신경과에서 두통 환자를 주로 보는 의료진도 구조전환 사업을 바라보며 걱정이 앞선다. 주민경 대한두통학회 회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두통 환자가 전부 경증은 아니다. 이들이 병원에서 적절한 대우를 못 받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바가 있다”면서 “구조전환 사업이 난치성 두통이나 2차 병원에서 놓칠 수 있는 중증 두통 환자들의 병원 접근성에 해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활의학과도 가정의학과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재활의학과 B교수는 “재활의학과는 문제가 터진 다음에 뒷수습을 하는 곳 취급을 받는다”며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에서 환자를 수술한 뒤 같이 케어하는 게 아니라 재활 치료는 재활의학과의 몫이라며 던져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구조전환을 거치면서 이 경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현영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응급 진료 확대뿐만 아니라 환자 추적 관리와 회복기 재활치료 분야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자가 수술만 받고 적정 관리를 받지 못한 채 다른 진료과나 병원으로 떠넘겨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은 지역사회 커뮤니티케어(재택의료)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가 재수술 받거나 응급실에 오는 경우를 줄일 수 있다”라며 “가정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등 경증·회복기 환자를 많이 보고 있는 진료과들이 주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노인들 중엔 다양한 복합 만성질환을 보유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서 “여러 진료과에 걸쳐 있는 경증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으면 중증 환자로 인정하는 분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기존에 중증으로 분류되는 478개 전문진료 질병군에 속하지 않더라도 고난도 수술·시술 필요성과 환자 상태 등에 따라 중증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분류 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다. 현재 당뇨병은 중증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지만, 중증도 분류 체계에 환자의 연령과 복합 질환 등이 반영되면 전문진료 질병군으로 재분류하는 식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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