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이 반도체, 우주항공과 함께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제품 개발부터 수출까지 전주기적 지원을 강화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정부는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발표하며 오는 2027년까지 연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개발하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을 두 배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관련 산업 육성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인천시의 경우 송도국제도시에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을 지원·육성하는 개방형 혁신 거점을 조성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서초구 양재동 일대를 ‘AI 미래융합혁신특구’로 지정했다.
벤처캐피털(VC) 투자도 늘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발간한 ‘2024년 상반기 국내 VC 투자 및 특례상장 기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바이오(의료 포함) 분야에 대한 신규 VC 투자는 67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85%(3665억원) 증가했다. 이는 전체 VC 투자액의 약 16.6% 규모로,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힘입어 바이오 벤처들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기술평가특례 등 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 바이오·의료 분야 기업은 13곳이다. 올해 상반기 신규 특례상장 기업 중 약 28.6%는 바이오·의료 관련 기업이다. 혁신을 거듭한 바이오 벤처들의 성과도 이어진다. 이날 국민일보와 쿠키뉴스가 주최한 ‘코어 이노베이션 어워즈 2024’에서 △루다큐어 △엘렉스랩 △와이즈에이아이 △코보티스 △지브레인 등이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신약 개발 전문기업인 루다큐어는 안구건조증 치료제 ‘RCI001'을 개발하고 있다. 루다큐어에 따르면 RCI001은 기존 치료제의 느린 발현 속도와 충혈, 안압 상승, 작열감 등 부작용 문제를 해소했다. 또 스테로이드 기반 치료제의 한계를 보완해 장기 사용이 가능토록 했다. 루다큐어는 국내 임상 1상을 올해까지 마치고 2025~2026년 국내와 미국 임상 2상을 병행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2026년 이후엔 글로벌 기술 이전과 신약허가신청(NDA)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 주요 동물의약품 개발 업체와 공동 연구를 통해 동물의약품 시장으로의 확장도 준비 중이다.
임상시험수탁(CRO) 전문 업체인 엘렉스랩은 예쁜꼬마선충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하는 데 특화됐다. 몸 길이가 1㎜ 정도인 예쁜꼬마선충은 인간 유전자와 60~80%의 동일성을 나타내 미국에서 임상시험 등에 활용되고 있다. 3일 안에 성체가 돼 대장균 배양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신규 비임상시험(동물실험) 모델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렉스랩에 따르면 자체 개발한 ‘AI-예쁜꼬마선충 신약 개발 플랫폼’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 3~4년 단축하고, 임상시험 비용을 최대 50% 절감하며, 성공률을 높인다. 엘렉스랩은 이 플랫픔올 활용해 파킨슨병에 효과적인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발굴한 바 있다.
의료 인공지능(AI)·정보기술(IT)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AI 기반 업무 보조 덴탈케어 플랫폼인 ‘덴트온(DentOn)’을 개발한 와이즈에이아이는 기술특례상장을 통한 코스닥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와이즈에이아이에 따르면 덴트온은 치과 고객 상담, 예약, 건강보험 안내, 병원 방문 전후 돌봄 서비스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해 치과 보조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병원 운영 효율성을 높여 덴트온 도입 병원들의 매출액과 응대율이 각각 약 13%, 27% 증가하고, 병원 운영비용은 약 15% 감소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 기반의 비대면 멘탈케어 솔루션인 ‘마인드시티’를 개발하고 있는 코보티스도 IPO 달성을 향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코보티스 측은 “기존 정신건강 서비스는 상담사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고 경제적 부담이 컸던 반면, 마인드시티는 우울이나 불안 등 사용자의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힐링 콘텐츠와 AI 피드백을 제공한다”면서 “사용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부담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난치성 뇌질환 환자를 위한 맞춤형 신경 치료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 지브레인은 ‘최첨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BCI 기술은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근육에 어떤 동작을 하라고 신호를 내면 컴퓨터가 그 신호를 해독하는 기술이다. BCI 기술은 신경이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신체장애나 전신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같은 난치성 뇌질환을 극복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지브레인이 개발한 무선 신경 임플란트 ‘핀스팀(Phin Stim)’은 뇌 피질에 최소한의 침습만 가하며, 무선 통신 방식을 적용해 환자 치료 중 이동성과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지브레인은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을 접목해 뇌파만으로 주변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업계는 바이오 벤처들이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 발전은 빠른데 관련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외국은 여러 기술을 빠르게 도입해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성과가 확실히 입증돼야 비로소 들여오다 보니 출발이 늦고 경쟁에서 뒤쳐진다”며 “관련 법안이 미비한 경우도 있어 아무리 기술이 좋더라도 임상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도 소극적이고 정책이나 규제들이 안 따라주면서 외국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면서 “업계가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규제 업무를 관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제도적으로 여러 좋은 장치가 있지만 식약처 직원들은 전향적으로 문서들을 검토할 여력이 없고, 인력이 부족해 마감에 쫓기며 일하는 느낌이 든다”면서 “프로젝트 초반에 임상시험 허가를 신속히 내줘서 필요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업체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