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사이자 국내 주요 철강사인 현대제철이 미국 현지에 신규 대형 제철소를 짓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보편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강화 정책을 예고하고, 자국에 상품을 팔고자 하는 외국 기업은 자국 땅에서 생산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그룹 차원의 최대 시장인 미국 사업 안정화를 위한 승부수라는 분석이다.
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 자동차 강판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그룹 공장이 위치한 조지아주 등 몇몇 주 정부 측과 접촉해 인프라 등 투자 여건에 관한 논의도 진행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앞서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역시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거점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어떤 지역에 투자해 무역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지 세밀한 검토를 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현대제철은 이날 공시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새 제철소를 미국에 건설한다면 연산 수백만톤 규모로 투자금도 10조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재 현대제철의 연간 조강 생산량은 약 2000만톤으로, 이 가운데 자동차용 강판 생산량이 500만톤에 달한다. 이 자동차 강판 생산량 중 약 400만톤이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에 공급된다.
현대차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대형 투자 검토에 나선 것은 트럼프 신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전망 속에서 자사의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이 지속 확대될 예정이어서 그룹 내 현지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앨라배마 공장, 조지아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 중이다. 메타플랜트 생산량이 확대되면 향후 연간 미국 내 생산량이 120만대 체제를 갖추게 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제철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강판을 가져다 미국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쿼터가 적용돼 공급 물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에 적용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한국 철강 수입량을 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약 383만톤)의 70%로 축소한 쿼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은 대미 철강 수출에서 ‘263만톤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따라서 현대제철이 미국에 대형 제철소를 신규로 건설하게 되면, 현대차그룹 차원의 자동차 사업 안정화에 더해 현재 불황을 겪고 있는 한국 제철 산업의 대미 전략에 있어서도 새로운 활로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업적 관점 외에도 현대차그룹 차원의 대규모 미국 투자는 출범을 앞둔 트럼프 신정부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향후 미국 사업 환경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대규모 무역적자가 자국 경제를 망치고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관세 장벽을 높이면 보조금 없이도 글로벌 기업들이 알아서 자국에 현지 투자를 할 것이라는 관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