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이 비공개가 원칙인 헌법재판소 평의 과정을 공개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개별 재판관의 심리 과정이 공개될 경우 헌재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에 추진된다는 점에서, 법안을 빌미로 헌재를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지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헌재가 국회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국정조사에 재판관 평의 내용을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현재 법안은 공동 발의자 서명을 받는 단계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명이 동참했다. 법안 발의 요건(10명)을 초과해 사실상 정식 발의가 확정적인 상태다.
개정안의 핵심은 헌재의 평의 내용을 무조건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헌재가 국회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국정조사에서 개별 재판관 평의 내용 제출 요구에 응해야 하며, 헌재의 서면 심리와 평의 과정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에는 또 헌재의 심리 순서에 대한 규정이 없어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사건을 다룰 수 있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헌재의 사건 심리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 재량권에 속한다는 것이 법조계 평가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개정안 부칙에 따르면 “이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며, 시행 이후 접수된 사건부터 적용된다”고 기재돼 있다.
서 대변인은 법안 발의 취지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재판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적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안 발의 자체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헌재를 향한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헌재 헌법연구부장을 지낸 김승대 전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이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헌재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이 법안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부 독립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의 과정에서 어떤 의견을 냈는지를 공개하라는 것은 결국 정치적 힘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라며 “정치적 사건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니, 아예 재판관들의 논의 내용을 까발리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발상 자체가 매우 불순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관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헌재를 정치권의 눈치를 보도록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재판관 평의 과정은 재판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철저한 비공개 원칙을 유지해왔다. 헌재법 34조는 ‘심판의 변론과 결정의 선고는 공개한다. 다만 서면심리와 평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이 법안 통과보다는 탄핵 반대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발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인 출신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헌재 결정문에는 최종 결과뿐만 아니라 각 재판관의 소수 의견, 결론은 같지만 과정이 다른 경우의 의견까지도 모두 명시된다”며 “그걸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데,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공개하겠다는 건 사법부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개정안에서 문제 삼은 심리 순서와 관련해서는 “재판장이 사건의 경중과 시급성을 따져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소송 지휘권의 범주에 속하는 부분을 마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법안은 윤 대통령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탄핵 반대 세력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차기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이렇게 싸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일 뿐”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