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최근 탄핵 관련 불법 전단지와 현수막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헌정 질서 복원’과 ‘법치주의 확립’을 외치는 일부 시위자들이 정작 불법 광고물을 통해 목소리를 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인근. 보이는 가로수마다 불법 전단지가 도배돼 있다. 욕설이 적혀 있는 것은 물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영어로 적힌 전단지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다. 한 재판관의 사진을 찢고 섬뜩하게 낙서한 전단지는 지나가던 행인들을 놀라게 했다.
광화문역 인근도 상황이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탄핵 찬성과 반대를 가릴 것 없이 정치적인 문구가 적힌 전단지와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옥외광고물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현수막은 행정동별 2개를 초과하거나 △정당 연락처, 게시 기간 등 누락 △보행자 안전 저해 등엔 철거 및 과태료가 부과된다. 가로수에 광고물을 붙이는 것 또한 불법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 광고물들이 시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종로구 가로정비과 관계자는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이 운전하면서 이동할 때 시야를 방해한다는 민원이 자주 있다”고 말했다. 안국역 인근 학교로 등하교하는 황모(16·여)양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왜 복잡하게 현수막과 전단지를 설치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앞도 잘 안 보이고, 길이 막혀서 걸어갈 때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서울 종로구에서 철거한 불법 현수막은 1072건이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불법 광고물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그러나 관할 구청에서 모든 불법 광고물을 철거하거나 정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종로구 가로정비과 관계자는 “규정상 집회가 끝난 뒤 정리를 하게 돼 있다”며 “사람들이 집회를 진행하고 있을 때는 정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집회 신고를 한 경우 불법 광고물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관계자는 이어 “안전상 문제가 있거나 15일이라는 현수막 표시 기간을 넘긴 것들을 대상으로 정비를 진행하고, 그 이전에 구두 철거를 계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 불법 광고물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재 앞에 걸린 현수막과 전단지가 얼마나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며 “일부 이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형태의 정치참여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헌재 판결 이후 상황이 정리되면 갈등과 분열에 대한 성찰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