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연구진이 진행성핵상마비(PSP) 치료제에 대한 임상 2상 연구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PSP 신약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지영 서울보라매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난 18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PSP 치료제 임상 2상의 이차 평가 지표와 하위 그룹 심층 평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PSP는 신경핵 이상으로 눈동자의 움직임이 점차 둔화되고 보행장애, 강직, 인지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희귀질환이다. 파킨슨병보다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평균 생존 기간이 짧다. 전체 PSP 유형 중에서 리차드슨 신드롬(PSP-RS)이 가장 많은 환자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임상 2상은 PSP-RS 유형 환자를 대상으로 신약 개발 기업인 젬백스앤카엘이 개발 중인 암 성장 억제 염색체(텔로머라제) 기반의 약물 'GV1001'을 6개월간 투여해 질병 조절 효과 여부를 확인했다. 향후 진행될 임상 3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3가지 용량(위약, 0.56mg, 1.12mg)으로 나누어 시행했다.
그 결과, GV1001 0.56mg 투여군에서 우수한 효과가 확인됐다. 사후 민감도 분석(Post-ad-hoc)에 따르면 GV1001 0.56mg 투여군의 질병 진행이 위약군 대비 116% 개선됐다. PSP 등급 척도 점수 변화량을 보면 GV1001 0.56mg 투여군은 0.82점 감소한 반면, 위약군은 5.19점 증가했다. PSP 점수는 0점에 가까울수록 증상이 경미하며, 숫자가 커질수록 악화된 상태를 나타낸다.
이 교수는 “GV1001 0.56mg 투여군은 6개월간의 임상 기간 동안 운동장애가 더 진행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며 “연수 운동 등 11개의 증상이 위약군과 비교해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PSP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은 복잡한 병리와 생리학적 기전을 갖고 있어 명확한 원인과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며 “임상 초기 단계라 아직 분명하게 말할 순 없지만, 이번 연구는 세계 최초로 PSP 치료 가능성을 보여줬다”라고 언급했다.
약물과 관련된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지 않으면서 안전성도 입증됐다. 이 교수는 “신체 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의 신경퇴행성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는데도 중증 이상의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연장 시험을 통해 안전성 데이터를 계속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가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극도로 적어 임상 결과에서 통계적 성과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희귀난치성질환의 경우 기존 임상 3상 프로토콜과는 다른 맞춤형 모델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임상에서 모집된 환자 수가 적더라도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과 지표만 달성한다면, 조건부 승인(허가)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구진과 젬백스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임상 3상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젬백스 관계자는 “후속 임상시험이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 함께 참여한 전상훈 서울대의대 흉부외과학교실 명예교수는 “GV1001 임상 2상 결과는 PSP를 치료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열쇠와 같다”며 “한국제약바이오협회나 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준다면 PSP 치료제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