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김형주 감독 “유아인 논란, 불가항력 자연재해 같았지만…” [쿠키인터뷰]

‘승부’ 김형주 감독 “유아인 논란, 불가항력 자연재해 같았지만…” [쿠키인터뷰]

영화 ‘승부’ 김형주 감독 인터뷰

기사승인 2025-03-26 17:39:20
영화 ‘승부’ 김형주 감독.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처음부터 기사에 실명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죠. 불가항력 자연재해 같은 상황이라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막막했어요. 그냥 견뎌야 했어요.” 영화 ‘승부’의 메가폰을 잡은 김형주 감독이 주연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를 처음 알게 됐을 때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약 없이 4년을 기다린 끝에 개봉을 앞둔 2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배우(유아인)의 연기는 만족했었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작업했는데, 그것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고 돌아봤다.

‘승부’는 대한민국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다. 공개에 앞서 유아인 출연분을 편집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개상 이는 불가능하다. 김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사람이니까 고민해 봤지만, 컷이나 액션과 리액션, 모든 것들이 어그러지기 때문에 고심 끝에 원래 방향성대로 내놓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었다. ‘승부’는 당초 극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작품이고, 바둑 기사들의 실화를 다룬 만큼 트렌드를 크게 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의 조바심이죠. 몇 년에 걸쳐 본의 아니게 나오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고요. 그래도 클래식한 맛이 있는 영화고, 창고 영화라도 이야기의 진정성이 휘발되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이런 부분은 걱정되지 않았어요.”

2017년 영화 ‘보안관’이 입봉작인 김 감독에게는 ‘승부’가 감독 인생의 승부처인 셈이다. 여기에 연기로는 비판하기 힘든 이병헌, 유아인이 합류했으니 기대는 더욱 컸을 터다. 그래서인지 공개되기까지 마음고생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는 전언이다. 

“짧은 몇 년 동안 오만 가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T1 팬인데, 팀 소속인 오너 선수가 가장 예쁜 꽃을 우여곡절 끝에 피는 꽃이라는 말을 했었어요. 저한테 이 말이 위로됐어요. 꽃이 얼마나 필진 모르겠지만, 멘탈이 강해진 것 같아요. 첫 작품과는 결이 다르지만,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바둑으로 치면 다음 행마로 가기 위해 초반 포석을 깐 거죠.”

시사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눈물까지 쏟았다고 털어놔, 그간 심적 고통을 짐작게 했다.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었어요.”

논란을 차치한다면, 배우로서 대적할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이병헌과 유아인의 존재는 ‘불계승’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이병헌은 실존 인물을 다루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가운데, 적정선을 타는 연기로 완성도를 높였다.

“두 배우 모두 연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화면에 보이기에 너무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감정들을 잘 표현해 줬어요. 디렉팅할 필요도 없을 만큼 준비를 잘 해오셨어요. 특히 조훈현이 아역 이창호, 성인 이창호를 각각 훈육하는 신이 있는데, 글로 보면 톤이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전자는 아이를 몰아치는 강도나 애티튜드가 과하면 스승 캐릭터가 다칠 수도 있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이병헌이) 완급조절을 정말 잘해주셨어요. 모니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영화 ‘승부’ 김형주 감독.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스승 조훈현과 내제자 이창호의 일화에 매료돼 ‘승부’를 기획했다는 김 감독은 바둑 자체에도 푹 빠진 모양새였다. 관객들 역시 그러길 바랐다. “바둑이 정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생각보다 격렬하고 잔인한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아침부터 밤까지 바둑을 두면서 4~5kg 빠진 프로기사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작품에서 바둑이 품격 있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복기처럼 그 어떤 스포츠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마주앉아서 대국을 짚어나가는 방식은 없거든요. 결과에 승복하고 승부처를 살피는 게 품격 있잖아요. 이 매력이 관객들한테도 전해지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작품 속 첫 대국은 감정 시퀀스처럼, 마지막 대국은 액션 시퀀스처럼 그려서, 보는 재미를 한층 배가했다. “첫 대국은 파고가 심한 감정 시퀀스라고 생각해서, 느린 호흡으로 두 인물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대국에서는 첫 대국과 대비되게 액션처럼 경쾌하고 음악도 리듬감 있게 갔어요. CG컷도 효과적으로 쓰고, 앵글은 대국장이라는 공간의 제약이 있어서 바둑돌의 시점, 바둑판의 시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어요. 배우들한테는 즐기는 느낌으로 임해주면 좋겠다고 했었고, 한 수 한 수 앞뒤 없이 들어가는 느낌을 설명해 드렸어요. 그 이상으로 잘해주셨고요.”

바둑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실제 기보와 똑같이 구현한 메인 대국이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으로 봤다. “자문해 주신 프로 바둑 기사님이 알게 모르게 제게 물러서 주신 게 있을 거예요. 영화적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드렸어요. 완강하시다가 동의를 해주셨죠. 대신 메인 대국들은 바둑 팬들을 위한 서비스 느낌으로 실제 기보처럼 재현했어요. 숨은 재미죠.”

이러나저러나 ‘승부’는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 대결이 관전 포인트다. 바둑을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바둑 영화라는 게 이 작품의 핵심이다.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마카세를 맛보는 느낌일 겁니다. 스크린으로 보니 디테일들이 잘 느껴지더라고요. 무대인사를 돌 때 고창석 선배님이 농담처럼 감독을 포함해서 출연진 누구도 바둑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이 바둑 영화를 만들었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셨어요. 바둑이 정적이고 고루하다는 허들을 넘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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