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억 ‘담배소송’ 2라운드 종료…흡연·질병 인과성 뒤집힐까

533억 ‘담배소송’ 2라운드 종료…흡연·질병 인과성 뒤집힐까

기사승인 2025-05-23 06:00:08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1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담배소송’ 항소심의 마지막 변론이 22일 종결됐다. 이 소송은 지난 2014년에 제기된 이후 1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2020년 1심 판결에선 원고인 건보공단이 패소했으나, 2심에선 1심과 다른 결론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담배소송의 항소심 제12차 변론이 진행됐다. 이날 변론엔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이 직접 의견 진술에 나섰다.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20갑년 이상 흡연자 중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10년간 지급한 공단부담금 533억원에 대한 배상을 담배회사들인 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에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 건강에 미치는 흡연 폐해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흡연 질환 진료비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다. 20갑년은 하루 1갑(20개비) 이상씩 20년간 흡연한 상태를 가리킨다.

건보공단은 1심에서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가 확인된 연구 결과들이 있고, 담배회사들이 제조 과정에서 폐암 등 질병 위험성을 줄이는 조치와 경고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한 발병 가능성, 담배의 설계상·표시상 결함 부존재, 담배의 중독성 축소·은폐 불인정 등을 이유로 담배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한 건보공단은 2020년 12월 항소장을 제출했다.

“흡연이 폐암 원인 의학적으로 추정 가능”

담배소송 항소심의 주요 쟁점은 △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 불법 행위 책임 △흡연과 폐암 등 발병 인과관계 △건보공단 직접 청구권 및 손해액 등이다. 건보공단은 그간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많이 축적됐다며 1심 판결이 뒤집히길 기대하고 있다.

건보공단 측은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보다 소세포폐암 발병 위험이 54.49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들며 담배회사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 건강보험연구원과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2004~2013년 전국 18개 민간검진센터 수검자 13만6965명을 추적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비흡연자와 견줘 과거 흡연 경험자는 폐암 발생 위험이 1.99배 더 높았고, 현재 흡연자는 3.25배 높았다. 30년 이상·20갑년 이상 현재 흡연자는 5.73배 더 위험했다.

폐암 중에서도 소세포폐암은 비흡연자보다 과거 흡연자가 11.20배, 현재 흡연자는 35.78배 발생 위험이 높았다. 30년 이상·20갑년 이상 현재 흡연자의 위험도는 54.49배까지 치솟았다. 전체 후두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평세포후두암은 30년 이상·20갑년 이상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8.30배 발생 위험이 높았다. 편평세포후두암은 88.0%, 편평세포폐암은 86.2%가 흡연이 암 발생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민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정 이사장은 “흡연이 폐암 발생에 기여하는 비율이 80~90%라는 수치에 비춰볼 때 흡연이 폐암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은 의학적으로 추정 가능하다”며 “피고(담배회사) 측은 성인 흡연율이 감소하고 있는 점을 들어 담배의 중독성이 약하다고 주장하지만,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성인 흡연율은 다시 증가세에 있으며 중독 환자 역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필립모리스가 100% 재정 지원한 ‘스모크 프리 월드 재단’도 한국 폐암 사망의 85.6%는 담배에 의한 것이라고 표한 바 있다. 즉 우리 국민 100명이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85명은 담배 때문이라고 국제기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피고들은 흡연 경고 문구를 오랜 기간 작고 눈에 띄지 않게 표시했고 ‘마일드’, ‘라이트’ 등의 표현을 쓰면서 담배에 발암성 물질 6개가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70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중장기적 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는 책임지고 미래 세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재판부가 의학적 증거에 기반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담배회사들은 소비자들이 담배의 유해성, 중독성 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게 했기에 소비자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이번 재판을 통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소비자 기망 증거 없어…불법회사로 몰아가”

피고 측은 정부가 담배회사들을 불법회사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담배회사 측은 “원고 측이 ‘내 돈을 썼으니 보상해달라’는 취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으나, 이는 법리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원고는 국가가 설립한 특수 기관으로서 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은 법령에 따라, 계획된 예산에 따라 이뤄지는 제도적 지출이다”라고 반박했다.

담배 제조업체가 소비자를 기망했다는 건 건보공단 측 견해에 불과하며,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담배회사 측은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유해성이나 중독성에 대해 소비자를 기망했다는 판단은 어느 판결에서도 인정된 바 없다”며 “공단이 수진자들에게 지급한 보험급여를 손해액으로 평가하는 것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원고의 일방적 주장이 반복되는 데에서 벗어나 정상적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피고 측 의견서를 마지막으로 받은 뒤 선고 기일을 정하기로 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