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초점] 검정치마 둘러싼 논쟁과 갈증

[쿡초점] 검정치마 둘러싼 논쟁과 갈증

기사승인 2019-02-18 17:12:21

‘뭘 기대하는지 알아. 어디서 들어봤겠지. (중략) 넌 근데 잘못 온 거야.’

조휴일 원맨밴드 검정치마의 새 음반 ‘써스티’(Thirsty)에 수록된 ‘발리우드’(Bollywood)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조휴일이 이 음반을 둘러싼 논란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내용이다. ‘써스티’는 요즘 인디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음반 중 하나다. 음반의 표지 이미지와 수록곡 가사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반면 지나친 ‘여혐 프레임’이 창작자의 자기 검열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써스티’는 검정치마의 정규 3집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시리즈다. 2017년 낸 첫 번째 시리즈는 달콤하고 밝은 사랑노래로 채운 반면, ‘써스티’는 음울하고 씁쓸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의 빛과 어두움”(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을 대조시킨 기획이다.

이 중 다섯 번째 수록곡 ‘광견일기’의 가사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우리 정분났다고는 생각지도 마. 내가 원하는 건 오분 길게는 십오분. (중략)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내밀어봐. 다른데서 퇴짜 맞고 와도 넌 오케이” 등 가사 내용이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넌 내가 좋아하는 천박한 계집아이”라는 ‘빨간 나를’의 가사와 괴물 가면을 쓴 남성이 의식 잃은 여성을 안고 있는 음반 표지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검정치마가 과거 발표했던 노래도 링 위에 올려졌다. 2010년 낸 ‘강아지’의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어주면 태워주는 차가 됐고”란 가사에선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이 읽힌다. 화자의 타락한 내면을 자조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도구적으로 쓰였다는 지적이 가해지는 이유다. 2011년 발표한 ‘음악하는 여자’는 “너의 신음 섞인 목소리가 난 너무 거슬려. 나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 등의 가사로 논란이 됐다.

음원사이트 멜론에 소개된 ‘써스티’ 페이지는 음반에 대한 누리꾼의 갑론을박으로 뜨겁다. 18일 기준 1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아이디 멍멍대장은 “예술도 사회적 맥락 안에 있는 건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가사를 이렇게 써도 되나?”라며 불쾌해 했다. 반면 음반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면 문제될 것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이디 그린트리는 “‘써스티’에서는 괴짜 같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사랑하게 돼 버리는 사랑을 그려낸 것 같다”고 평했다. “뻔뻔하고 그로테스크한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는 조휴일의 설명에 천착한 주장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노래의 창작자와 화자와 동일시해 ‘여혐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써스티’는 쉽게 말해 나쁜 여자와 나쁜 남자의 이야기이고 이런 맥락에서 음반을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작가는 또 “음반의 소재나 내용이 불편할 수 있지만, 모든 음악을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틀 안에 담겨야 한다면 그걸 예술이라고 볼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창작자의 자기검열이 강해지면서 한국음악의 다양성이나 생동성을 침해할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비스포크(BESPO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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