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뻑쇼’는 억울하다 [친절한 쿡기자]

‘흠뻑쇼’는 억울하다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2-06-07 18:10:12
가수 싸이가 2019년 부산에서 연 ‘흠뻑쇼’ 공연 모습. 피네이션

154.9㎜. 기상청이 7일 발표한 지난 3~5월 전국 강수량입니다. 평년 강수량의 60%를 간신히 넘습니다. 특히 지난 5월 한 달 간 내린 비의 양은 6.8㎜로, 평년의 6%에 불과했습니다. 기상청이 강수량 측정을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역대급 가뭄’이라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음 달 개막하는 가수 싸이의 공연 ‘흠뻑쇼’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흠뻑쇼’는 제목 그대로 물에 흠뻑 젖어 즐기는 공연입니다. 싸이가 지난달 MBC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공연 한 번에 식수 300t(톤)을 뿌린다고 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연은 오는 8월까지 전국에서 10회 안팎에 걸쳐 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연을 위해 3000t 넘는 물이 사용되는 셈입니다.

온라인에선 ‘가뭄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식수 수백 톤을 공연에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물 낭비’라는 겁니다. “싸이가 ‘흠뻑쇼’에 이용하려던 물을 농업용수로 기부하고 자기 에너지로 공연을 채우면 더 멋지겠다.” “미국 서부 지역은 가뭄 때문에 잔디밭 물주기도 규제한다는데….” “영화 ‘설국열차’가 따로 없다.” ‘흠뻑쇼’를 향한 누리꾼 시선에는 뾰족하게 날이 섰습니다.

오는 24~26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관객을 맞는 ‘워터밤 서울 2022’, 7월9~10일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처음 열리는 ‘송크란뮤직페스티벌’, 7월30~31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개최되는 ‘신촌물총축제’ 등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을 뚫고 마침내 관객을 만나는가 싶었는데, 가뭄과 농수 부족 사태로 인해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됐습니다.

2022 ‘흠뻑쇼’ 예고 사진. 피네이션

환경부가 지난해 펴낸 ‘2020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명이 하루에 쓰는 수돗물 양은 약 300ℓ(리터)에 달합니다. 한국인 1000여명이 하루에 사용하는 수돗물이 ‘흠뻑쇼’ 1회에 투입되는 셈입니다. 쿡기자는 궁금했습니다. 이 정도 물 사용량이 정말 농가를 위협할 정도로 많은 양일까요.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답했습니다. “사람들 걱정은 이해하지만, (농수 부족으로) 싸이를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고요. “서울에서 매일 50만t 넘는 물이 단지 미관을 위해서만 쓰여요. 도시의 매력을 높이려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는 거죠. 그뿐인가요. 골프장을 생각해보세요. 한 곳에서만 하루에 1000t 가까운 물을 씁니다. 게다가 골프장은 지하수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농가에 직격타를 줘요. 하지만 국민 체육 진흥을 이유로 오히려 골프장을 늘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환경오염을 동반한 물 사용이 농가에는 더욱 위협적입니다.”

가요계는 이제 막 되살아난 대중음악 공연이 또 다른 암초를 만난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모양새입니다. 대중음악 공연은 코로나19가 퍼진 지난 2년 간 제대로 열리지 못했습니다. 연극·뮤지컬·클래식 등과 달리 공연이 아닌 행사로 분류돼 더욱 엄격한 방역 지침이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공연장은 문을 닫고 전문 인력이 떠나는 등 산업은 초토화됐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요 관계자는 한숨과 함께 말했습니다. “대중에게 평가 받는 것이 연예계 숙명이라는 사실은 잘 압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쌓인 우울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가 이런 논란으로 얼룩져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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