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지옥’을 넘어 ‘간병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극적인 간병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사적 간병비 규모는 매해 증가해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간병이 개인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이 되지 않도록 국가가 간병비와 간병의 질을 책임지는 공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고령화시대, 국민의 사적 간병비 규모와 제도적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주최한 국회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간병 문제가 비극적인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간병하던 가족을 살해하는 ‘간병 살인’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1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다 살해한 죄로 60대 아버지가 재판에 넘겨지는가 하면, 지난 17일에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치매 아버지와 장기간 그를 간병해온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의료기술 발전과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수명 증가, 노인의료비 급증, 전통적 가족구조 해체 등으로 인해 간병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사적 간병비 규모도 매년 증가해 1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2020년 기준 간병인을 쓰는 유급 간병률과 가족 간병률 등을 합친 입원환자의 사적 간병률은 60.5%로, 가족의 간병 부담이 상당히 높다”며 “고령화에 따라 간병 부담과 간병 서비스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병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일수록 사적 간병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상급종합병원(75.3%)과 요양병원(74.8%)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간병 도우미료도 가파르게 상승하며 지난해 기준 1일 유급 간병비는 10만2536원에 이른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이 환자에게 간병을 포함한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인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1일 본인부담금은 1만7742원이다. 한 달로 치면 55만원가량이 소요된다. 유급 간병비와 가족 간병비를 모두 포함하면 사적 간병비는 연간 1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김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의 간병 수요는 68.5%를 차지하지만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 공급은 16.7%에 그친다. 요양병원도 간병 수요가 높지만 공급은 1.3%에 불과하다”며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 중심으로 통합서비스 병동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돌봄의 질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재철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은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하면서 전문 의료인이 아닌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돌봄으로 감염, 낙상, 욕창 등의 환자 안전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면서 “단순 간병비 급여화에 멈춰선 안 된다. 모든 세대의 돌봄의 질 확보를 위한 ‘예방적 사회투자 정책’이란 관점으로 문제 해결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지난해 연말 정부는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정책을 발표했다.
정상이 강북삼성병원 간호본부장도 “환자의 고령화뿐 아니라 간병을 담당하는 가족과 간병인도 고령화돼 안전·관리 문제가 발생하고, 신체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안전한 간병 환경 조성을 위해 간호인력 배치와 업무 기준, 수가 등이 조정돼야 한다고 했다. 정 간호본부장은 “2016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사업 시행 후 수가가 8년간 조정되지 않아 병상가동률이 90% 이상을 유지해야 인건비 보존이 가능하다”며 “현재 일당 2만원 정도의 환자부담률을 조정하고 의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병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병원 퇴원 후에도 간병이 필요한 사람이 관리 밖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단 시각도 있다. 전동환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기획실장은 “재가 의료·간호·돌봄 지원을 위해 ‘방문형 간호통합제공센터’를 신설해 재가 간호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센터 관리자는 간호사로 하되, 장기요양제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문간호조무사를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료기관의 의학적 처치와 요양시설의 돌봄이 잘 연계되도록 통합체계를 구축해야 한단 진단도 나왔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간병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은 복합적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지속적인 의학적 관리 없이는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다”며 “요양시설은 의료 사각지대라는 두려움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입소를 기피하는데,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의 복합체 형태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간병 부담을 덜기 위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지원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699개소로 총 7만5293개 병상이 있다. 중증 수술 환자, 치매·섬망 환자 등을 전담 관리하는 중증 환자 전담병실이 올 7월 도입되고, 간호조무사 인력이 최대 3.3배 확대 배치될 예정이다. 요양병원 10곳에 대한 간병비 지원 1단계 시범사업도 7월부터 시작된다.
서유진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사무관은 “일정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은 간호 인력의 지도 감독 하에 간병이 이뤄져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며 “간병 인력 1인당 환자 배치 기준을 손보고, 2026년 말까지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해 2027년부터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한 병원들을 대상으로 본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