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째 이어지는 의료공백 속에서 디지털치료기기 처방이 멈춰 섰다. 업계는 현 사태를 기회 삼아 처방 확대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치료기기(Digital Therapeutics, DTx) 업체들은 기존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제품 처방을 의원급으로 확대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인해 상급종합병원 진료는 마비됐고 의료기기 처방도 멈춘 상태다. 업계는 전공의가 없는 1차, 2차 병원에서 처방률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의료 소프트웨어를 약처럼 처방해 질병의 예방, 관리, 치료에 사용한다.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의 경우 병원에서 시행하는 습관 교정, 수면 질 평가 등 인지행동장애 치료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 탑재해 환자가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의사는 처방과 함께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전한다.
국산 디지털치료기기 1호로 허가를 받아 병원에 진입한 에임메드는 지난 1월부터 불면증 치료기기 ‘솜즈’의 정식 처방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고려대안암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6곳의 상급종합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공의 파업과 맞물리면서 신규 처방률이 급격히 줄었다.
에임메드 관계자는 “디지털치료기기는 기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보니 손이 많이 가는 의료기기 제품 중 하나”라며 “이를 담당하던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진료 시간조차 부족한 전문의 선생님들은 기기를 처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1차, 2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처방 및 실증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며 “올해 30곳의 의료기관 모집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에임메드는 이번 의료공백을 기회로 삼아 서비스 품질 강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에임메드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모인 110건의 실제 처방 데이터를 토대로 심층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어떤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시장에 진입한 웰트는 지난 6월1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불면증 치료기기 ‘슬립큐’의 첫 처방을 이뤄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상급종합병원 처방을 잠시 멈춘 상태다. 처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홍보를 전개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웰트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5개월간 급여 인정 기준금액 논의를 가진 후 오는 11월부터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갈 방침이다.
웰트 관계자는 “첫 처방 시기부터 의료공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우회 전략을 세워뒀다”며 “임시 비급여가 아닌 급여로 처방될 수 있도록 기준금액을 심평원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지털치료기기는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 제품이기 때문에 지금은 시장이 불안정한 시기”라며 “무리하게 처방을 이어나가기보단 향후 수월한 처방을 위한 초석을 먼저 다져야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웰트는 여러 의학회와 논의를 해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한 우려사항을 청취하고, 의사를 대상으로 한 제품 교육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또 판매 및 마케팅을 담당한 한독과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오는 11월엔 본사를 한독 건물로 이전하기로 했다.
웰트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를 의미 있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보고 있다”며 “11월부터 본격적인 처방에 들어가 상급종합병원 외에도 1, 2차 의료기관에서 매출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디지털치료기기 처방이 가장 활발한 독일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치료기기가 병원 현장에서 적극 쓰일 수 있도록 규제 개선에 힘쓸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최근 허가를 받은 3·4호 디지털치료기기도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규제 전문가 밀착 상담, 선제적 기준 마련 등 규제 지원을 위한 다리를 단단하게 놓아 제품 출시를 앞당기고 다양한 질환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