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이기수 총장 “공교육 정상화, 입시를 바로세워야”

고려대 이기수 총장 “공교육 정상화, 입시를 바로세워야”

기사승인 2009-02-03 22:16:01

[쿠키 사회]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새벽형 인간이다. 매일 새벽 2시30분쯤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재에서 동이 틀때까지 독서와 집필, 기사 검색, 하루 업무 구상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의 이런 습관은 어린 시절 고향인 경남 하동에서 진주로 유학을 떠나야 했던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몸에 뱄다. 어머니가 끓여준 아침을 먹고 첫 버스를 타려면 새벽 3시쯤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집무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상아탑의 학자라기 보다 털털한 시골 아저씨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겼다. 책상에는 고대 예비 신입생인 ‘피겨요정’ 김연아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대입 완전자율화가 예고된 2012학년도 대학별 입시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본고사와 고교등급제에 대한 고려대의 입장은 무엇인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시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본고사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건 그 다음 문제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 (고교별) 고려대 입학생 배출 실적을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최근 수년간 고려대 합격생을 평균 5명 배출한 A고교라면 교장에게 5배수인 25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겠다. 이들 중 우리가 원하는 학생을 뽑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겠다는 늬앙스로 들린다.

“1단계로 수능 성적으로 정원의 5배수를 확보하고 나서 교장 추천으로 (과거 출신고교 별 고려대 합격자 수의) 5배수를 받는다. 그런 다음에는 점수 1,2점차는 무시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중시하는 선발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추천도 점수 위주가 아니라 특기적성을 중시할 수 있다. 국문학과 같으면 시 잘 쓰는 학생들을 추천받는 식이다.

-잘 뽑기 경쟁이 아니라 잘 가르치는 경쟁을 강조하고 계신데.

“어느 정도 수학능력이 있는 학생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 학부모들로부터 자녀를 받아 공부시켜서 사회에 내보내는 데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내가 고대 가서 무슨 공부해서 뭐가 되겠다’는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여건을 길러줘야 한다. 과거에 4년이면 대학을 졸업했지만 앞으로 고대에 들어오면 (졸업하기까지) 5년은 ‘필수’, 6년은 ‘선택’이 될 것이다. 1년 정도는 해외 나가서 인턴 경험을 하고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졸업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것이다.”

-지도교수제를 강화한다고 들었다.

“잘 가르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교수들에게 ‘고려대 교수의 특권을 누리려면 책무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고대 교수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강의실이든, 연구실이든. 특히 1주일에 나흘은 매일 1시간씩 연구실에서 학생들과의 상담시간(Office Hour)을 가져야 한다.

외국인 교수들을 제외하면 고려대 교수 1인당 학생 5명씩 맡을 수 있다. 옥스포드 같은 경우 1대1 지도를 하던데 우리 형편에 그 정도는 못하지만 밀착 지도를 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다시 지도교수를 찾아올 수 있도록 일종의 멘토 역할을 교수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학생들은 장학금 신청을 하려면 반드시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지난 학기부터는 한 학기에 한 학점씩 지도교수를 만나 활동하면서 졸업하기 전까지 8학점을 따도록 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계지출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7.5%로 OECD 국가 중 최고다. 사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가.

“바로 그 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자고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의욕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버락 오바미 미 대통령이 쓴 책 ‘담대한 희망’을 가져온뒤 몇 대목을 소리내서 읽었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공립학교의 쇄신과 대담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정부는 지난 20년 가까이 쇄신과 개혁 언저리에서 맴돌며 어설픈 시도를 벌이다 평범한 성과에 만족하고 말았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발상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대립에서 비롯된다.’

서평을 써달라고 해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어 읽었는데 이 대목은 마치 미국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얘기 하는 것 같았다.

-일부 대학에서 교수평가를 실명으로 공개하고 있다.

“우리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려고 한다. 다만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강의 평가는 인기 평가에 그칠 수 있어서 문제가 많다. 학점을 잘 주는 교수, 과제물이 적은 교수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평가항목을 정교하게 만든뒤 동료교수들의 평가도 보탤 계획이다.

그동안 강의 평가에서 상위 5%에 들면 ‘석탑강의상’을 수여하는 등 인센티브만 줬다. 앞으로는 낮은 평가를 받은 교수들에게 패널티를 줄 생각이다. 가령 논문 실적이 미비할 경우 처음에는 ‘경고’를, 반복될 경우 월급을 깎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이 총장에게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묻는다면.

“한 마디로 ‘민의를 따르는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말하고 싶다. 국민이 530만표 차로 뽑아준 대통령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친박연대까지 합하면) 여야의 의석 비율이 167대 81이다. (야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대통령과 국회에 부과된 권능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경제위기나 용산참사나 모두 법치주의가 물 흐르듯이 흐르고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돼야 극복할 수 있다.”

-고려대 총장에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지난 1년을 자평해달라.

“1년 만에 연구비를 포함해 발전기금을 2000억원 모았다. 국제화에 있어서도 성과가 있었다. 옥스퍼드대와 지난해 4월 MOU를 체결했으며 캐나다 UBC에 이어 올해는 중국 인민대에 고려대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준공한다. 전 세계에 뻗어있는 고대 교우회 조직을 활성화해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자라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어려서 아홉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나는) 17살에 장가를 가고 적당히 살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진주로 유학을 가겠다고 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식이 엇나가지 않게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봐 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자녀교육의 특별한 비법은 없다.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독일 유학 시절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당시 나와 아내는 매일 집에서 책을 봐야 했기 때문에 다른 걸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랬더니 자식도 책을 읽더라. ‘공부하라, 공부하라’ 잔소리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가정에서 책을 읽는 모범을 보여라.”만난 사람=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석운 교육팀장,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전석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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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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