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소지품만 뒹굴… 화왕산 화재 현장 ‘생지옥 방불’

그을린 소지품만 뒹굴… 화왕산 화재 현장 ‘생지옥 방불’

기사승인 2009-02-11 09:16:01
[쿠키 사회] 10일 화마가 휩쓸고 간 경남 창녕균 화왕산 현장. 하늘과 맞닿아 있던 18만㎡의 억새평원은 사라졌다. 검게 변한 참사 현장엔 매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특히 사망·실종자를 많이 낸 억새평원 배바위 인근은 사고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참사 현장엔 주인 잃은 휴대전화와 보온병 등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뒤틀어진채 나뒹굴고 있었다. 등산객들이 먹다 남긴 김밥, 사과 등 음식물이 보였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날 경찰, 소방공무원 등 800여명이 투입돼 수색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도 참사 뒤의 화왕산처럼 굳어 있었다. 현장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70대 부부는 “우리 딸을 찾아달라”며 수색 소방대원을 붙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억새평원 일대에는 불길로부터 등산객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방화선 폭이 2∼3m에 불과했다. 창녕군은 방화선 폭을 30∼50m 정도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사 현장의 방화선 폭은 들쭉날쭉했다. 특히 가뭄 장기화로 억새풀이 바짝 말라 있는 상태에서 방화선은 무용지물이었다. 또 배 바위 뒤편이 절벽인 점을 알면서도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창녕군은 희생자가 대거 발생한데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대형사건이 늘 그렇듯이 인재(人災)였다.

참사 피해가 컸던데는 예기치 못한 돌풍도 한 몫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을 피운 뒤 돌풍이 불면서 10여 미터가 넘는 불기둥이 관람객을 덮쳤고, 주위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마산기상대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불을 피웠을 때 뜨거운 열기가 주위의 찬 공기를 흡입하는 현상이 생긴다”며 “이렇게 생긴 돌풍이 화를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왕산 억새 불태우기는 해가 진 후 진행하기 때문에 갑자기 불을 피웠을 때 돌풍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다. 사전에 기상청과 조율만 제대로 됐어도 돌풍 현상을 예측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셈이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이날 도청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화왕산 참사가 조기에 수습될 수 있도록 물적, 인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지시했다.

한편 ‘화왕산 참사’로 인한 사망자 1명의 신원이 이날 밤 늦게 추가로 확인됐다. 창녕군 관계자는 “오후 6시쯤 창녕 서울병원에 안치된 사망자가 백계현(55)씨인 것으로 혈액검사 결과 가족들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망자 4명 가운데 백씨를 비롯해 김길자(66·여)씨, 박노임(42·여)씨 등 3명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나머지 사망자 한 명의 신원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11일쯤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창녕=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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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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