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제5형사부(부장판사 고종주)는 18일 가정집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50대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신모(28)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행동해오다 24세 때인 1974년 병원에서 성전환증 확진을 받고 나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며, 이런 사정을 아는 남성과 과거 10년간 동거하는 등 여성으로 생활해온 기간과 이런 삶에 만족한 정황을 고려할 때 피해자는 형법에서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31일 부산 부산진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트랜스젠더인 김모(58)씨를 흉기로 위협해 현금 10만원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당초 검찰은 피해자가 법률적으로는 남성이라 강간죄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신씨를 특수강도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으나 재판부와 협의를 거쳐 주거침입 및 강간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번 판결은 1996년 비슷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과는 배치되는 최초의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성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과 내외부 성기의 구조가 다르며, 여성으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남자로 생활한 기간(33년) 등을 고려할 때 트랜스젠더 피해자(당시 38세)를 강간죄가 규정한 ‘부녀’, 즉 여성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은 2006년 트랜스젠더의 호적 정정 첫 인정판결에 이어 또 한 번 전향적인 판결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시 트랜스젠더의 호적 정정 첫 인정 판결은 단지 가사와 민사 영역에서만 여성으로 인정하는데 그쳤다. 이번 사건을 심리한 고종주 부장판사는 당시 호적정정을 하급심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판사였다.
이번 강간죄 인정은 인신구속이 가능한 형법으로도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모든 성전환자에 대해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보지 않았다. 외모와 여성으로 살아왔던 성징 등 여성으로 볼 수 있는 판단이 섰을 때에만 여성으로 인정한다고 못 박았다.
외국의 경우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성폭행을 강간죄로 인정하고 있고 재판부는 이번 판례도 참조했다.
부산지법 박주영 홍보판사는 “그동안 성전환자에 대해서는 민사적 가족법에서만 여성으로 인정됐을뿐 형법상으로는 엄연히 남성의 성만 인정했다”며 “이번 판결은 트랜스젠더가 민·형사상 완전한 여성임을 확정 짓는 판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부산=국민일보 쿠키뉴스 윤봉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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