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한나라당의 25일 미디어관련법 기습 직권상정은 민주당 의원들의 방심 속에 수분 만에 완료됐다. 한나라당의 '허허실실 전법'에 민주당이 말려 든 결과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설마했는데 당했다"는 자조와 함께 "타협하자고 해놓고 뒤에서 뒤통수를 쳤다"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한나라당 소속인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이날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직권상정 여부에 대해 "예단하기 어렵다"면서 "상황을 봐야 한다"고 연막을 쳤다. 한나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도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었다. 문방위 회의장에서는 "오늘 우황청심환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 위원장은 의총이 진행되던 중간에 한나라당 문방위 소속 의원들을 따로 불러 직권상정을 암시했다. 김효재 강승규 의원은 위원장석 왼쪽의 민주당 의원들을 몸으로 막기로 했고, 위원장실 직원들은 오른쪽 의사봉을 에워싸기로 했다. 고 위원장은 오후 4시쯤 갑자기 "국회법 77조에 의해서 22개 미디어 관련법을 전부 일괄상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며 "행정실 의안 배부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소란속에 의사봉을 두드렸다. 고 위원장은 상정 직후 미리 복사해 준비한 A4 2장짜리 성명서를 배포한 뒤 10여분만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국회를 빠져 나갔다.
민주당은 의사일정이 갑자기 변경됐고, 의안배포가 제대로 안됐으며, 22개 법안을 제대로 호칭하지 않았다는 3가지 이유로 무효론을 제기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양심에 꺼리껴 당황한 나머지 실패한 날치기를 자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어제 저녁 양당 정책의장과 수석부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깊은 논의를 했고 타결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며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부, 그리고 일부 국회 관계자들이 합작해 처음부터 사기극을 벌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국회법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괄상정 할 수 밖에 없다"는 고 위원장의 발언은 의사 일정을 위원장 직권으로 변경한 것이며, 의안 배부는 의원들 컴퓨터 화면에 법안이 노출된 순간을 기준으로 해 문제가 없고, 22개 법안은 이미 고 위원장이 지난 19일 회의를 통해 관련법을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으로 통칭하기로 했다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엄기영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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