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운사 “막장드라마 작가들 인간을 위해 써라”비판

한운사 “막장드라마 작가들 인간을 위해 써라”비판

기사승인 2009-03-02 17:09:03

[쿠키 문화]“난센스야, 난센스에요. (요즘 막장드라마를 )보면 여간해서 정을 붙일 수가 없어요. 다른 세상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지….”

방송 작가로 한국 방송계를 풍미한 한운사(87·사진) 한국방송작가협회 고문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막장 드라마 폐해<본보 2월13일자 1·3면>에 대해 묻자 금세 격앙됐다. 그는 “오죽하면 아내가 유치하고 치졸해서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고 한다”며 “쓸데없이 치고 박고, 껴안고…. 요즘은 이 드라마가 뭔가를 그리고 있구나 싶은 것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 한운사는 작가 후배들을 향해 “임마, 인간을 위해 써라, 호통을 치고 싶다”고 까지 말했다.

한운사는 1946년 서울대 불문과에 재학 중 방송 작가로 데뷔해 드라마,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60여년간 작품을 써온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다.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아로운전(傳)’ ‘현해탄은 알고 있다’, 시나리오 ‘아낌없이 주련다’ ‘빨간 마후라’ ‘남과 북’에 이어 장편소설 ‘대야망’도 썼다. 그는 새마을 운동가
‘잘살아 보세’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노 작가를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여전히 작가에 대한 프라이드만큼은 대단했다. 그는 “사랑하는 후배들이니까 이런 얘기해도 된다”며 작가다운 작가, 제대로 된 작가가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처음부터 인간과 인생을 탐구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작가가 될 수 있어요. 드라마의 시작부터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하고, 우리네 삶과 주인공의 삶을 견줘보면서 드라마의 방향을 결정해야 해요. 그러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열정이 생기고, 기쁨과 보람이 생기죠.”

그는 제대로 된 작가라면 드라마에 진실을 넣고, 이 진실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야 많은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재미로만 만들어진 드라마는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남과 북’이란 작품은 5·16 일어나고 몇년 후죠. 남북관계가 아주 미묘했고, 당시에는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하던 시기였어요. ‘당신, 이런 것 써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만큼 쓰기 힘들었죠. 영화로 만들어졌을 땐 정보부가 서른 군데 이상을 잘라냈죠. 하지만,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면서 드라마의 위력이 대단했던 시기였고, 사람들이 드라마 밖에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없던 때였기 때문에 써야 했지요.”

‘남과북’은 이산가족과 분단의 아픔을 그려 1965년 영화로도 개봉된 작품이다. 북한군 장교가 포탄 터지는 전선을 넘어 남쪽 애인을 만나러 오는 이야기. 작가는 이 때문에 정보부에 수차례 불려 다니곤 했다.

그는 또 이승만 대통령의 이발사를 등장시켜 제1공화국의 몰락 시기를 그린 1964년 동아방송 라디오 드라마 ‘잘 돼갑니다’를 비롯해 스위스 외교관이 레만호에서 북한의 옛 애인을 만나는 이야기 ‘레만호에 지다’등 정치 소재의 작품을 써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한운사는 최근 다큐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아하, 작품 속에 진실이 담기면 그것이 아름답건, 추하건 느낌이 오는구나, 감동이 오는구나”라고 오랜만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진실과 감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드라마가 양산돼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그것을 작가의 사회적 책임이라 불러도 좋았다.

“드라마는 세상을 바꿔 놓죠. 그런데 그 드라마는 작가가 만들잖아요. 현실세계에서 작가의 힘은 굉장합니다. 작가는 거리를 가면서 ‘당신들이 나를 몰라주지만, 나는 당신 삶에 영향을 주고 있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당연히 책임감을 가져야죠.”

그는 그것이 작가 의식이고, 그것이 작가의 밑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밑천을 갖고 있는 후배 작가가 김수현뿐”이라고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다 엉터리는 아닐 것”이라면서 “(제대로 작품을 쓸 줄 아는) 재주 있는 후배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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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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