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년’ 송유근 “조기교육? 놀이공원에서 놀았는데요”

‘천재 소년’ 송유근 “조기교육? 놀이공원에서 놀았는데요”

기사승인 2009-03-03 19:03:01

[쿠키 사회]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아이에게 남들과 똑같은 걸 하도록 강요하는 우리나라 학교만큼 답답한 공간은 없어요. 유근이의 장점은 ‘엉덩이가 무겁다’는 것인데,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40분간 듣고 10분씩 쉬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더라고요. 유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쉬는 시간이 되니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쉬는 시간에는 뭐해야 돼 ’라고 물었다고 하더군요. 만약 계속해서 원치도 않는 수업을 강제로 들어야 하는 학교생활을 했다면 지금의 유근이는 없었을 겁니다.”

“영재를 죽이는 영재교육”

‘천재소년’ 송유근(12·사진 왼쪽)군이 최근 학사모를 썼다는 소식에 그와 가족을 만난 것은 지난달 26일, 송군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 아파트에서였다. 초등학교 3개월, 대학생활 1년여를 포함해 제도권 교육은 1년 3개월여밖에 받지 못한 송군이 어느새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석박사 통합과정 연구원이 돼 있었다. 중·고교과정은 독학으로 마친 송군은 2006년 ‘최연소 대학생’이 됐으나 이내 대학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뒤 혼자 힘으로 학점은행을 통해 학사모를 썼다.

영재교육의 현 주소를 묻는 질문에 아버지 송수진(50)씨는 바둑 얘기부터 꺼냈다. 조훈현 국수(國手)가 없었더라면 ‘바둑 영재’였던 이창호 9단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겠냐는 얘기였다. 송씨는 “제대로 된 영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영재를 도맡아 기르는 ‘사범’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교육기관 숫자만 늘이는 방식의 영재교육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예비학교’만 증가할 뿐이며 ‘영재를 죽이는 영재교육’만 진행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송씨는 “영재 대접을 받으며 과학고에 들어간 학생이든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이든 결국엔 ‘똑같은’ 대학생이 돼버린다”며 “전국의 뛰어난 교수들이 조훈현처럼 영재를 하나씩만 맡아 기른다면 제대로 된 인재 수천명을 길러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이어 ‘맞춤형 교육’도 없고, 제대로 된 실험 조차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영재교육기관과 대학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근이가 대학을 중퇴하고 UST에 들어간 이유도 이같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UST는 학부는 없고 대학원만 있는 형태의 연구기관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고가의 각종 실험장비들이 구비돼 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유근이의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제서야 유근이가 원했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길러진 유근이의 영재성

계획대로라면 유근이는 석박사 통합과정이 끝나는 2012년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된다. 그때가 돼도 유근이의 나이는 15살에 불과하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유근이가 어떤 형태의 조기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 박옥선(50·사진 오른쪽)씨는 “어릴 때 매일 놀이공원에서 놀게 했을 뿐”이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놀이공원 연간이용권을 끊어 학원 대신 놀이공원에 보냈다는 것이다. 한글도 놀이공원 지도를 읽기 위해 유근이 스스로 익혔다고 했다. 또 놀이기구가 돌아가는 원리를 고민하고 놀이기구를 타며 느꼈던 기분을 상기하며 어려운 물리 이론과 수학 공식을 아들이 몸으로 배워나갔다고 했다.

‘유근이가 나이가 들면서 공부를 접고 다른 진로를 원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원래 유근이가 과학자가 아닌 발레리노가 되길 원해 6살 때부터 3년 동안 발레 학원에 보냈다. 근데 아들이 배가 나온 체형인데다 여자애들과 함께 발레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만두게 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시종일관 숫기 없는 웃음으로 어머니 박씨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유근이는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비로소 두 눈을 반짝였다. 유근이는 “동네 아줌마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과학 이론을 설명해주는 과학자, ‘이름있는 과학자’보다는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 99개를 알아도 내가 모르고 있는 나머지 1개를 위해 항상 노력하는 자기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지훈 기자, 사진=윤여홍 기자
lucidfall@kmib.co.kr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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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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