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입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고,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구족화가 김성애(62)씨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4)씨의 합동 무대가 4일 서울 청담동 ‘갤러리 더 스페이스’에서 열렸다. 대한류마티스학회가 여성 류마티스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개최한 ‘여류(여성+류마티스) 행사’ 초청 공연이다.
김씨는 30분 동안 붓을 입에 물고 캔버스 위에 유화를 그렸다.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황토색 담장과 하얀 목련이 소담하게 그려졌다. 김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희아씨가 연주한 캐논 변주곡과 즉흥 환상곡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김씨는 27세 때 류마티스 관절염이 발병한 뒤 전신 장애가 오기 시작했다. 7세 때 앓았던 류마티스가 재발한 것이다. 김씨는 “젊은 나이에 류마티즘에 걸리고 나서는 10년 가까이 죽을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의지했던 어머니가 1985년에 돌아가신 것도 큰 상실감을 줬다.
95년 김씨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어린 시절 꿈인 화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몸이 점점 굳어져 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당시에 대해 “입이 터지고 피가 나 성할 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마음만은 행복했다.
2000년에는 뒤늦게 인생 동반자인 남편 강제영(60)씨를 만났다. 2004년 결혼한 뒤로 김씨에게 남편은 넓은 세상을 보는 눈과 같다. 활동이 어려운 아내를 위해 그림 소재들을 카메라에 담아 전해주기 때문이다. 남편은 시연 중에도 쉴새없이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씨는 동료 환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마음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류마티스가 난치병이긴 하지만 좌절에 빠져서는 안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도 몸이 조금씩 굳어가고 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김씨는 류마티스 환자들을 위해 그림 세 점을 기증했다.
연주를 마친 희아씨도 사랑과 희망을 강조했다. 그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며 “류마티즘 앞에서 희망을 잃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하신 사랑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오늘 이 자리가 사랑의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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