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압력 의혹 파문으로 '신뢰의 위기'에 처한 사법부의 수장 이용훈 대법원장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1993년 '3차 사법파동' 당시 소장 판사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법개혁을 요구했던 이 대법원장이 16년 만에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첫해인 93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대법원이 개혁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개혁안을 내놓자 서울지법 민사단독 판사 28명은 같은해 6월 "사법부의 자기 반성 없이 진정한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며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발표했다. 이 대법원장은 서부지원 법관회의를 열어 모든 법관에게 의견을 개진토록 하고 이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직접 발표했다.
법관회의를 제도화해 언로를 확보하고, 대법원장의 인사권 견제를 통해 소신있는 판결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3차 사법파동은 변호사 단체와 사법연수생에게까지 번져 나갔고 사퇴 압력을 받던 김덕주 대법원장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유신시절 시국사범에게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등 소신있는 판결로 '법원 내 재야'로 불렸던 이 대법원장은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주무위원을 맡아 사법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3차 사법파동은 여러가지를 바꿔놓았다. 법관회의 명문화는 물론 법원 수뇌부 개편 계기가 됐고, 사법제도발전위는 97년부터 시행된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의 골격을 만드는 등 일정 부분 성과도 이뤘다. 이 대법원장은 이에 힘입어 2005년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법원장에 올라 공판중심주의와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제 후배 법관들로부터 도전받는 위치에 서게 된 그는 고심 탓인지 10일 출근 길에도 고뇌에 찬 흔적이 역력했다.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 및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 반성과 사법 행정 전반에 대한 개혁 움직임이 뒤따라야 하는 만큼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그의 행보가 주목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인해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임기 3년6개월 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 만큼은 분명하다. 파문의 당사자는 신 대법관이지만 이 대법원장 역시 재판 압력 파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는 최근 "이런 과정을 겪어서 우리 법원이 재판 독립을 이룩한다면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이 과거 경험에 비춰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고강도 개혁을 주문할 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