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A사 부산 지역 아파트 분양소장인 박모(45) 차장은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근 불 꺼진 단지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박 차장이 맡은 단지는 분양 시작 1년이 지났지만 500여가구 중 절반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계약금 정액제, 중도금 무이자, 발코니 무료 확장 등 다양한 마케팅을 벌였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는 “서울 등 수도권은 최근 정부의 양도소득세 완화, 취득·등록세 감면 등으로 미분양이 조금씩 줄고 있지만 지방은 움직임이 없다”며 “수도권 담당자들에 비해 실적이 좋지 않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미분양은 현재 7000여가구 규모다.
늘어나는 악성 미분양
국토해양부는 1월 전국 미분양주택이 총 16만2693가구로,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해 말(16만5599가구)보다 2906가구(1.8%) 줄었다고 30일 밝혔다. 반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해 말 4만6476가구에서 1월 4만8534가구로 오히려 2058가구 늘었다. 또 전체 미분양 중 민간부문은 16만1406가구에 달한다. 미분양을 방치할 경우 건설사는 물론 금융기관의 자금 흐름을 옥죄어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금융경제연구실장은 “극심한 분양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1995년(15만가구)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며 “분양여건 악화로 건설사 공급계획도 크게 위축될 전망이어서 향후 공급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분양 적체 등 분양시장 위축으로 민간 주택건설 실적은 2007년 39만9000가구에서 지난해 23만가구로 크게 줄었다.
올 들어서도 분양시장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금융결제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분양된 전국 8개 사업장 중 서울 한남동 한남 더힐(민간임대) 등 2곳을 제외하면 모두 정식 청약기간에 미달됐다. 특히 지방 5개 단지는 청약률이 0%였다. 이달에도 마찬가지다. 지난주까지 분양된 전국 8개 사업장 중 서울 효창동 효창파크 푸르지오 등 2곳 외에는 모두 미달이었다. 지방 5개 단지 중 2곳은 청약률 0%였다.
미분양 왜 쌓이나
미분양 적체는 건설업계의 수요예측 실패, 고분양가 책정 등이 원인이다. 실제로 2003년 이후 집값 상승기에 면적이 클수록 가격이 많이 오르자 건설사들은 앞다퉈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공급에 치중해왔다. 분양가도 덩달아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 조사 결과 2003년 중대형 분양가는 3.3㎡당 평균 934만원에서 지난해에는 1527만원으로 63.4%나 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미분양 중 중대형 물량은 8만8965가구로 절반이 넘는다. 미분양이 5000가구가 넘는 B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경기 전망과 관계 없이 수요가 적은 지방에도 중대형을 너무 많이 공급했다”면서 “최근 분양조건 완화, 분양가 인하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때를 놓쳤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과 문제점
정부는 30일 과천 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민간이 미분양 아파트에 활발히 투자할 수 있도록 건설사의 자산유동화 상품이나 리츠, 펀드 등 관련 투자상품에 대한 공적기관의 보증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아파트 분양때 이뤄지는 집단대출 보증비율도 현행 90%에서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100%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는 미분양을 해소하기에는 대책이 미흡하다며 근본적인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뒷북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대한주택공사 등 공공부문의 미분양 매입 등 대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이미 시장 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이어서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 재원확보 문제 등 현재 미분양 매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특히 지방 미분양은 고가의 중대형 아파트 비중이 높아 단기간내 해소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방 도시 인구감소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주택협회는 미분양 해소 차원에서 현재 지연되고 있는 서울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 외에 담보대출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주택 구입자금 출처조사 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특히 동일한 혜택이라면 투자 면에서 수도권 미분양을 구입하는 게 낫다는 게 수요자들의 생각”이라며 “지방에 별도 대책을 마련해줘야 시장이 다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주안 금융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전용 149㎡ 이하인 감면 대상을 165㎡ 이하(외환위기 당시 기준)로 확대하거나 소득세법상 고가 주택 기준인 9억원 이하로 한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취득·등록세를 인하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며 “구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최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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