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빼자] 서울 강남 산후조리원 2주에 1200만원

[거품을 빼자] 서울 강남 산후조리원 2주에 1200만원

기사승인 2009-04-07 20:27:01

[쿠키 생활] “저희는 복도 벽부터 달라요. 숨쉬는 재질로 만들었거든요. 여기가 가장 좋은 방이에요. 전망이 탁 트여 시원하죠? 산모가 답답한 방에 있으면 산후우울증이 쉽게 와요. 이건 스웨덴제 가습기고, 이건 스위스제 유축기에요. 여기 이 물병은 오스트리아산 아기 전용 생수인데….”

특급 호텔 스위트 룸보다 못할 것 없는 방에 개인용 전자동 좌욕기, 일제 유기농 원단 신생아 용품 등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최고급 설비와 물품들이 갖춰져 있다. 이달 중 개원 예정인 서울 삼성동 A 산후조리원의 최고급 방의 모습이다. 이용 가격은 2주에 무려 1200만원(이하 2주 기준). 그보다 낮은 등급도 800만원, 500만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후조리는 친정 엄마 몫이었지만 최근 개인주의 확산으로 산후조리를 전적으로 가족에게만 맡기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산후조리원 이용이 급증하면서 저가의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의 전문성 및 위생 문제가 잇달아 불거졌다. 안전문제에 민감한 임신부들이 조금 비싸더라도 ‘시스템을 잘 갖춘 유명 산후조리원’을 선호하자 고급산후조리원이 크게 늘었다. 고가의 산후조리원들은 ‘산모와 아기를 배려한 시설’ 을 강조하고 있지만 불필요한 서비스가 적지 않아 이용료만 부풀린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요지경 가격, 사치 VS 당연한 권리=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산후조리원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전국에 402개, 서울에 104개다. 2007년 말 대전 주부교실이 산후조리원 이용 경험자 285명에게 가격을 물었을 때만 해도 87.1%가 100만∼179만원을 냈다고 답했지만, 최근 1∼2년 사이 평균 가격대가 200만원 이상으로 상승했다. 서울 역삼동 강남 차병원 330만원, 묵정동 제일병원 350만원, 청담동 청담마리 350만∼480만원, 강남구 신사동 호산 350만∼450만원으로 유명 산부인과 부설 조리원들은 300만원을 웃돈다.

서울 강남 및 분당 일대에는 500만∼1000만원대 특실을 가진 조리원도 10여 곳이 넘는다. 이런 곳들은 10명 안팎의 산모만 받으면서 특급 호텔 수준의 설비와 서비스를 갖췄다고 선전하고 있다.

값이 비쌀수록 임신 6개월 때쯤 예약해야 할 만큼 성업중인데, 이를 이용했거나 예약한 산모들은 ‘그럴만하다’고 주장한다.

이달 중 출산을 앞두고 분당의 500만원짜리 조리원을 예약해둔 이성희(30·가명·성남시 정자동)씨는 “언니가 친정에서 산후조리하면서 엄마와 갈등을 겪어 본 후 산후조리원을 적극 권했다”면서 “평생에 한두 번인데 좋은 환경에서 조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용에 대해선 “다소 부담스럽긴 해도 ‘고생해서 애낳고 이만한 사치도 못하냐’는 생각이고 남편도 기분 좋게 동의해 줬다”고 덧붙였다.

◇이런 서비스 꼭 필요할까?=문제는 최고 1200만원까지 하는 산후조리원 가격이 과연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가이다. 세부적인 설비 및 서비스를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내용들도 상당수다. 대부분 대형 LCD TV와 DVD, 가습기, 노트북 컴퓨터, 오디오, 월풀욕조 등 설비를 내세우는데 이들은 산후조리와 직접 연관이 없는 물건들이다. 월풀욕조는 출산 후 최소 한 달간 통목욕을 못하는 산모에게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또 얼굴 및 전신 맛사지, 기계를 이용한 피부 및 비만 관리, 눈썹·손톱 다듬기, 두피 마사지 등 미용과 다이어트 관련 서비스를 내세우는 곳도 상당수다. ‘산모들이 지루해할까봐’라는 이유로 아기 모빌 만들기, 1대1 요가 및 체조 교습, 작명 등 강좌나 영화 상영관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출산한 지 2주밖에 안된 산모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최안나 아이온 산부인과 원장은 “산후 부종과 탈모 등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회복되는데 출산 직후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선전한다면 산모를 현혹하는 것”이라며 “특히 출산 2주밖에 안된 시점은 관절과 인대 등이 약해 무리한 마사지와 체조 등은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몇몇 업체들이 군살 제거에 이용한다고 선전하는 ‘고주파 기계’는 실제로는 약한 전기 자극을 주는 비의료용 기계이고, 만일 의료용 기기라면 산후조리원에서의 사용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조리원은 부유한 산모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거나 산부인과에서 조리원까지 리무진으로 ‘모셔온다’는 등 사치 심리를 자극한다.

사실상 비용의 상당수는 실내 인테리어를 즐기는 값이며 사치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치 누리다 모유수유 실패할 수도=특히 모유수유를 하려는 산모에게 이런 ‘럭셔리’ 서비스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모유수유를 원활하게 하려면 출산 직후부터 아기가 원할 때마다 젖을 물려야 하고 처음 몇 주간은 인공 젖꼭지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고가의 산후조리원일수록 산모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밤에 아기를 신생아실에서 전적으로 맡아 분유 또는 유축해둔 모유를 인공젖꼭지로 수유하는 경우가 많다. 또 산모들이 마사지나 강좌 등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면 낮에도 아기가 원할 때마다 젖을 먹이기 어렵다.

모유수유 전문가인 ‘모유119’ 홍순미 소장은 “고급 유축기를 갖추는 게 고급 산후조리원의 기준이 되곤 하는데 유축기는 모유수유 산모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아기를 신생아실에 맡긴 채 젖을 짜두었다 먹이는 산모 대부분이 젖몸살을 앓고 모유수유에 실패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출산 직후는 산후조리를 위한 때이기도 하지만 아기의 세상 적응을 돕는 시간이기도 하다”면서 “아기는 엄마 곁에 누워 자고 모유를 먹을 때 가장 안정되고 건강하며 엄마도 아기가 잘 때 자고 깰 때 젖을 먹여야 산후 회복이 잘된다”고 조언했다.

산후조리원은 한 때 자유업이었다가 2006년 신고제로 바뀐 뒤 시·군·구청에서 위생 및 안전 관리를 하고 있지만 가격이나 서비스 내용을 계도할 기관이나 법적 근거 등은 없는 상태다.



대전 주부교실 김영수 소비자보호부장은 “300만원 이상의 산후조리원 가격은 분명 일반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비정상적인 수준”이라며 “조리원들이 산후조리와 관련없는 서비스를 넣어 가격을 높이는 데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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